포스코의 기술 과외로 풍구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선 서울엔지니어링 직원들이 풍구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포스코의 기술 과외로 풍구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선 서울엔지니어링 직원들이 풍구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가전 리모컨 제품을 생산하는 오성전자는 지난해 말 LG전자의 기술 과외를 받아 검사 공정을 자동화하고 제품의 제조이력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성전자는 이를 통해 40% 선이었던 자동화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 근로자 두 명이 하던 일은 로봇이 대체했다. 기존 인력은 다른 공정에 투입돼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과외가 한국 제조업의 새로운 상생모델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이 2015년부터 중소기업 제조현장에 들어가 공정 기술 전수에 나서면서다. 2018년부터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사업’을 통해 예산을 지원하며 힘을 보탰다. 스마트공장이란 설계·개발, 제조 및 유통·물류 등 생산 공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지능형 생산 방식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을 통해 대기업의 기술 과외를 받은 중소기업은 생산량을 평균 30%가량 향상시켰다.

기술 전수로 공정 개선

LG '기술과외' 받은 오성전자…자동화율 50%까지 높여 이익 껑충
충남 청양군 비봉면에서 단무지를 생산하는 으뜸농산은 지난해 10월 포스코의 지원으로 입고·재고 관리 시스템을 개선했다. 원재료 등을 창고에 들여놓은 뒤 현장 직원이 장부에 수기(手記)로 적던 관행을 바코드를 활용한 실시간 전산 처리 방식으로 바꿨다. 오대운 으뜸농산 공장장은 “장부에 적혀 있어도 재고량과 맞지 않은 사례가 많았는데, (관리 시스템 구축으로) 이제는 생산 계획과 큰 오차 없이 공정을 진행할 수 있게 돼 생산 효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으뜸농산은 식자재 보관 온도, 냉동기 압력 등도 자동·원격제어가 가능하도록 16대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버리는 식자재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공급한 스마트공장관리 솔루션업체 대단의 강건욱 대표는 “채소 보관실이 적정 온도를 넘어서면 담당자들에게 문자가 전송된다”며 “실시간 품질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식자재가 상하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 김해에 있는 조류 부화기·애완동물 인큐베이터 제조업체 오토일렉스는 삼성전자의 도움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 회사에 부화기 제조 공정의 핵심인 사출 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 공급망관리시스템(SCM) 등도 지원했다. 오토일렉스가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고객의 수리 요청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제조업 혁신의 새 모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천연자원 없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끊임없는 제조업 혁신을 이뤄가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29.3%를 차지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도 제조업이다. 제조업이 창출하는 민간 일자리는 전체 산업 가운데 가장 많은 400만 개에 이른다. 전체 산업의 월평균 임금이 281만원인 데 비해 제조업은 356만원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생산성은 낮다는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9.6달러다. 미국(70.8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45.9달러), 독일(66.4달러), 프랑스(68달러) 등 주요 선진국의 생산성을 크게 밑돈다. OECD 평균(53.4달러)에도 못 미친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의 스마트화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환경 변화로 스마트공장 구축 없이는 제조업체가 한국에 남아 있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상생 협력을 통한 국내 중소 제조업의 역량 강화는 대기업에도 절실한 과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및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위기, 세계 각국의 리쇼어링(기업의 본국 회귀) 정책 등으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부품 공급망) 체계가 붕괴되고 있어서다. 대기업 기술과 공정 노하우 전수를 통한 중소기업의 스마트화가 제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윈윈 전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전수야말로 서로가 이익을 누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진정한 상생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 역할은 이 같은 생태계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며 “이익공유제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나누도록 강제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정선/ 안대규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