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A씨는 한국에서만 42가구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67억원에 이른다. 2018년부터 갭투자로 수도권과 충청권의 소형 아파트를 집중 매입했다. A씨는 아파트를 살 때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돈이 없어 자금 출처 역시 불분명했다. 몇몇 보유 주택에 대해선 임대소득 신고도 누락했다.

국세청이 3일 세무조사에 들어간 외국인 다주택자 42명은 모두 A씨와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다. 30대 중국인 유학생 B씨는 서울과 경기, 인천, 부산 등에 있는 아파트 8가구를 사들였다. 이 가운데 7가구를 전·월세로 임대했으나 임대 수입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외국계 회사 임원인 C씨는 임대 수입을 숨기기 위해 외국인 임차인만 들여 매달 수천만원의 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외국인은 국내 주민등록법상 세대주로 인정되지 않아 연말정산 때 월세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C씨는 서울에서 한강이 보이는 45억원짜리 아파트와 30억원짜리 강남 아파트 등 총 120억원 상당의 아파트 4가구를 구입했다.

국세청이 국내 거주 외국인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갔지만 국내에 살지 않는 ‘비거주 외국인’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에 주소를 두고 있는 이들은 세대원이 파악되지 않아 세대별로 합산하는 양도세 및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에 사는 외국인이 자신과 가족 명의로 분산해 국내 아파트 3가구를 매입해도 양도세 및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1주택자 기준으로 낸다. 내국인에 대한 중과는 외국인과 비교해 역차별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국인의 국내 아파트 매입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2017년 1조7899억원(5308건)에서 2018년 2조2312억원(6974건), 지난해 2조3976억원(7371건)으로 증가했다. 올 들어선 5월까지 1조2539억원(3514건)에 달했다.

최근 3년5개월간 외국인이 사들인 국내 아파트 2만3167가구 중 1만7240가구(74.4%)가 수도권 아파트였다. 경기 아파트가 1만93가구(43.6%)로 가장 많았고 서울과 인천이 각각 4473가구(19.3%), 2674가구(11.5%)로 뒤를 이었다. 그다음으로 충청(1913건), 부산(767건), 대구(321건) 등의 순이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은 외국인이 매입하는 국내 부동산에 대해 취득세를 대폭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년여간 외국인이 취득한 서울 강남 3구 아파트는 강남구 517건, 서초구 391건, 송파구 244건이었다. 거래액으로 보면 강남구 6678억원, 서초구 4392억원, 송파구 2406억원이었다. 강남 3구의 취득 건수는 전체 외국인 국내 아파트 취득 건수의 5%에 불과했지만 거래액으로는 17.6%에 달했다.

아파트 매입자의 국적을 보면 중국인이 1만3573건(58.6%)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미국인이 4282건(18.5%)으로 그다음 많았으며 캐나다(1504건), 대만(756건), 호주(468건), 일본(27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