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美기업까지 거론하며 날 세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계약금 반환소송 안낼 것으로 기대
재실사 수용 불가…거래 12일 종료

기안기금 투입→정상화→재매각
'플랜B' 구체적 방안 공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아시아나 매각 무산시 법적책임 HDC현산에"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의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매각 무산이 불가피하다.”(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작업이 사실상 ‘파국’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아시아나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3일 HDC현산으로의 아시아나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고, 산은 계열사로 편입해 직접 정상화할 수 있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산은은 HDC현산에 계약 해지일인 오는 12일까지 ‘현명한 결정’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다만 고위 경영진이 쏟아낸 강경 발언들은 채권단의 무게중심이 ‘플랜B’에 실리고 있음을 내비쳤다.
산은 “재실사 요구는 지연 작전”
산은은 이날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시아나 매각과 관련한 채권단의 입장을 밝혔다. 산은은 그동안 “M&A 계약의 당사자는 금호산업과 HDC현산”이라며 의견 표명을 피해 왔다.

HDC현산이 요구한 재실사(아시아나의 경영 상황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는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최대현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금호산업이 HDC현산에 7주의 실사기간을 줬고, 인수단이 6개월 이상 아시아나에 머물며 모든 재무정보를 제공받았다”고 했다. 재실사 요구는 “통상적 M&A에서 볼 수 없는 과도한 수준”이라며 “거래 종결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최 부행장은 “12일 HDC현산에 계약 해지 통지가 가능한데, 실행 여부는 HDC현산의 최종 의사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은 측은 매각 무산 시 ‘플랜B’의 방향도 소개했다. 산업·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아시아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 최대주주에 올라 유동성(자금)을 공급해 아시아나 경영을 정상화한다는 것이다. 아시아나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대상 요건도 충족한다는 게 산은의 설명이다. 최 부행장은 “정상화가 이뤄지면 재매각을 빨리 추진해 다른 대기업 그룹을 다 열어놓고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나 계열 저비용항공사(LCC)의 분리 매각이나 자회사 처리 등은 시장 상황에 따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美 몽고메리워드의 쇠락 떠올라”
간담회에 함께 등장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은 HDC현산에 더 강하게 날을 세웠다. 이 회장은 “금호와 산은 측은 하등 잘못한 게 없다”며 “계약 무산의 모든 법적 책임은 HDC현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약 무산의 원인을 HDC현산 측이 제공했기 때문에 계약금(2500억원) 반환 소송은 없으리라 생각한다”며 “본인 책임은 본인이 지라”고 했다.

이 회장은 경영 판단을 잘못해 망해버린 미국 유통업체 사례를 꺼내기도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판단을 내린 미국의 몽고메리워드와 시어스의 사례가 요새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한때 현지 1위 유통업체였던 몽고메리워드는 불황을 우려해 투자를 줄였다. 반면 시어스는 금융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키웠다. 이후 미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몽고메리워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 회장은 “지금의 먹구름이 걷히고 나면 항공산업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며 “항공산업을 긴 안목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는 훌륭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이라며 “HDC현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산은은 아시아나의 정상화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남은 기간 HDC현산이 협의를 요청하면 성실히 응하겠다”면서도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여러 협의나 경제 활동에 있어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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