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인터파크 회장의 꿈…신약 개발 시장에 도전장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사진, 57)이 바이오융합연구소를 만든 건 지난 2017년이다.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 10만명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2015년 카오스(KAOS, 무대 위에서 깨어난 지식)재단을 설립한 지 약 2년 만이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인터파크 내부에서조차 ‘바이오’ 간판을 단 회사 부설 연구소 설립을 이 회장의 유별난 과학 사랑 정도로 생각했다. 이 회장은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출신이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인터파크가 바이오 신약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바이오융합연수소를 분사해 지난달 31일 인터파크바이오컨버전스(IBCC)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고 3일 밝혔다. 인터파크와 아이마켓코리아가 각각 지분 51%와 49%를 보유하는 구조다. 33세에 데이콤 사내 벤처로 인터파크를 창업해 전자상거래라는 신(新)시장을 개척한 이 회장이 바이오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IBCC가 내세우는 경쟁력은 협업과 융합이다. 연세암병원 조병철 폐암센터 연구팀이 신약 개발에서부터 임상 연구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조 교수가 이끄는 폐암센터는 80여 명의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항암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다국가 임상 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홍준호 IBCC 신임 대표는 “조 교수팀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신약 성능 검증 단계에서 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며 “IBCC가 연구소 시절부터 해왔던 연구 활동과 인터파크그룹의 자본력을 더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IBCC는 신약 개발 시장의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홍 대표는 “신약 시장은 수천억원의 개발 비용이 들고, 미(美) 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IBCC가 하려는 건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다양한 단계에 있는 사람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IBCC는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는 신약 개발 관련 여러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비상근 연구진 또는 자문단으로 구성 중이다. IBCC는 초기 개발 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들을 발굴해 임상 1단계 정도까지 검증을 끝낸 뒤, 글로벌 제약사들에 라이선스를 판매할 계획이다. 화이자 한국·일본 메디칼 디렉터를 역임한 이상윤 내과 전문의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IBCC는 이미 항암 신약 관련 3~4개의 ‘파이프 라인’을 확보했다. 일부는 개발자로부터 라이선스를 사들이기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고, 일부는 위탁 연구를 의뢰했다. 홍 대표는 “우선 항암제 개발을 시작으로 다양한 신약 분야로 개발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게 IBCC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파크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까지는 내부에서도 격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 신설로 이어진 데엔 이 회장의 열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사석에서도 “순수 과학을 하고 싶었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과학에 대한 열의가 깊다. 카오스 재단을 설립한 것도 과학의 대중화와 젊은 과학도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수백명의 국내외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카오스 재단이 마련한 무대에서 무료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의 남다른 과학계 인맥이 향후 IBCC의 주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회장은 복제약(제네릭) 개발·생산에 집중돼 있는 국내 제약업계의 상황도 IBCC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홍 대표는 “인터파크의 컨버전스 방식은 자체 기술, 연구 이력 중심의 기존 신약 개발 방식과 차별화를 추구한다”며 “미 FDA의 신약 승인 트렌드를 분석하고, 의료 현장의 실제 수요를 반영해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신약을 능동적으로 선정한 후 그에 최적화된 기술과 인력들을 모으고 융합해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제약사들이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매몰된 투자금 때문에 ‘유턴’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IBCC는 좀 더 유연한 연구와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IBCC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바이오 신약 개발의 특성상 투자금을 몽땅 날릴 수 있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IBCC는 신약 후보 하나를 임상 1단계까지 끌어올리는데 적어도 250억원 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터파크가 최근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주력 사업인 여행업에서 타격을 입고 있는 터라 재무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