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 제품을 입은 모델들. 버버리 제공

버버리 제품을 입은 모델들. 버버리 제공

봄가을에 입는 긴 겉옷인 트렌치코트. 톡톡한 원단에 허리를 끈으로 묶는 디자인으로 분위기까지 내는 이 옷은 흔히 '버버리'로 통칭된다. 유일무이한 디자인이다 보니 브랜드가 제품을 대표하게 된 셈이다.
버버리는 영국의 자존심이자 특유의 체크무늬를 상징한다. '버버리 체크'라는 말과 "영국이 낳은 건 의회 민주주의와 위스키, 비틀즈,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버버리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정도 그만큼 각별하다.
코로나로 반값세일과 구조조정
1856년 설립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명품업체 버버리가 최근 전례없는 행보를 보여 전세계 명품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버버리는 최근 전세계에서 500명을 해고하고 일부 국가의 사무실은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징데일리는 버버리가 중국과 호주, 미국 등 전세계 일부 국가에서 옷과 가방 등의 제품을 최대 50% 할인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값 세일에 이어 구조조정까지, 버버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버버리가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극심한 영업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최근 2분기 매출은 2억5700만파운드(약 3886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나 줄었다. 특히 유럽과 중동, 인도, 아프리카 등 EMEIA 지역의 매출이 75% 급감했다. 미주와 아시아·태평양 매출은 각각 70%와 10% 감소했다.

그나마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지역이 버버리를 기사회생시켰다. 지난달 들어 중국 지역의 매출이 10%대 상승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국 내 매출 증가폭이 30%를 웃돌면서 6월 아태지역 매출이 성장세로 돌아섰다. 중국은 버버리에게 '고마운 시장'이다.

마르코 고베티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구조적 비용 절감' 계획을 발표하며 전격적인 혁신과 변화를 예고했다. 고베티 CEO는 "이번 일자리 감축 대상에는 런던 본사 150개 사무실도 포함한다"면서 "절감한 비용을 고객 대면 활동에 재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버버리는 1차 구조조정에서 1억4000만파운드(2117억원)의 비용 절감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추가 구조조정을 통해 5500만파운드(831억원)의 비용을 더 줄일 예정이다.
'부모님 세대 브랜드' 이미지 벗자
버버리 트렌치코트. 버버리 제공

버버리 트렌치코트. 버버리 제공

코로나19가 쉽게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명품 브랜드들은 매출이 급감해 손해를 보거나 재고가 쌓여도 제품 할인을 거의 하지 않는다. '명품' 이미지와 브랜드 명성에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판단에서다. 오히려 샤넬과 루이비통 등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버버리가 이같은 '금기'를 깬 것은 향후 전망 등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징데일리는 "버버리는 미증유의 재앙적인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할인에 뛰어든 전세계 최초의 명품 브랜드"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패션잡지는 "버버리의 대대적인 혁신을 이끌었던 리카르도 티시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CO)가 버버리를 떠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 출신인 티시는 2018년 버버리에 합류해 '젊은 버버리'로의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전세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이 같은 이야기가 급속하게 퍼지자 버버리는 "티시가 버버리를 떠난다는 이야기는 사실무근"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버버리는 '엄마 아빠 세대의 브랜드'라는 낡은 이미지를 벗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디지털, 디자인 등 많은 부문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체크 무늬와 트렌치 코트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접목시킨 다양한 제품을 꾸준히 선보인다.

오랜 유산과 전통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전세계 명품업계 중 최초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했으며 콜렉션 등 주요 행사를 디지털화했다. 버버리는 오는 9월 런던에서 무관중 라이브 런웨이 쇼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