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6개월 [BC+AC] 4편

▽ 통역사들 3월 이후로 일감 뚝 끊겨
▽ 가을 2차 유행시 생계 위협↑
▽ 50% 할인 요구…'단가 후려치기' 우려
[편집자 주] 7월 20일은 국내에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꼭 6개월째 되는 날입니다. 6개월 간 전염병과 사투를 벌인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늘상 마주했던 일상 속 풍경 상당수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Before Corona, BC)과 이후(After Corona, AC) 6개월 너무나 빨리 변해버린 일상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타격이요? 말도 안 되게 크죠. 백신이 나오는 날만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이번 상반기에는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반기에 있던 행사들이 하반기로 연기됐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얼마나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막막합니다."
24일 코엑스의 한 컨벤션홀. 대부분 컨벤션홀이 텅텅 비어있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24일 코엑스의 한 컨벤션홀. 대부분 컨벤션홀이 텅텅 비어있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통역사들은 코로나19 타격 여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통역사들의 활동 무대인 국제 행사가 취소되거나 무한정 연기됐기 때문이다.

24일 오전 찾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벤션 센터는 한산했다. 이곳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14번의 국제회의를 개최하며 국내외 인파로 붐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올해 1월 말 이후로 이곳에서 열린 국제 회의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각종 모임과 행사가 취소된 탓이다. 특히 해외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2주간 자가격리가 필수가 되면서, 국제 행사를 주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2주 간 자가격리로 인해 해외 행사 참석자의 체류 비용이 증가하고 스케쥴이 2주씩 더 늘어나면서 섭외부터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제회의 개최국 상위 10개. 사진=한국관광공사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제회의 개최국 상위 10개. 사진=한국관광공사

한국의 연간 국제회의 개최 건수는 전세계 1~2위를 다툰다. 2019년에는 2위를 기록했지만, 2015년부터 3년간 매해 1위를 기록한 국제회의 강국이다. 그만큼 통역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큰 시장이 조성돼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각종 국제행사가 취소·연기되면서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줬던 통역사들의 일자리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7년차 베테랑도 "7월에 하루도 일 못했다"
24일 코엑스의 한 컨벤션홀. 국제 회의 및 행사가 자주 열리던 이곳은 최근 인적이 드물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24일 코엑스의 한 컨벤션홀. 국제 회의 및 행사가 자주 열리던 이곳은 최근 인적이 드물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통역사에게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봄가을이 성수기고, 여름이 비수기다. 성수기에는 한달에 20일 안팎으로 통역일을 했다는 통번역사 A씨는 3월 이후 달마다 5일 이상 일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3월 이후로 일감이 뚝 끊긴 상태"라며 "비수기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7월 한달 동안 일한 날이 이틀 뿐이 안 된다. 그마저도 모두 비대면으로 일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결국 최근에는 주 분야가 아니던 번역일을 더 하게 됐다.

동시통역사 B씨는 통역일만 7년째인 베테랑이다. 지난해 쉬어본 날이 손에 꼽는다는 그도 6월에는 3일에 불과했고, 7월에는 단 하루도 일하지 못했다고 한다. A씨와 다르게 B씨는 번역일은 원래 하지 않아 일감 자체가 아예 사라진 실정이다. 그는 "상반기 내내 놀다시피 했다"라며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 2차 유행시 생계 위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들에게 정말 위기는 가을이 될 전망이다. 질병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코로나19는 9월부터 또 한차례 대유행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달 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을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면서 실내 활동이 많아지고 바이러스가 좀 더 활동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유행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7월부터 올가을 2차 유행 가능성을 우려하는 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브리엘 렁 홍콩대 의학원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추(올해 10월 1일) 혹은 늦가을 전에 제2의 전염병 물결이 올 것이 확실시 된다"라고 경고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도 "바이러스는 추운 날씨에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라며 코로나19가 가을에 폭발적으로 재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행사 주최측이 코로나19 상황을 파악하면서 행사 일정을 연기하고 있어, 통역사들은 그 누구 보다도 백신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성수기인 가을에도 지금처럼 일하지 못할 경우, 생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통번역사 C씨는 "가을에도 이렇게 일감이 없다시피할 정도면 생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때부터는 이 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지금도 일 없어 힘든데…절반요금 '단가 후려치기'까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업계에는 또다른 변화와 우려가 등장했다. 바로 단가 조정이다. 최근 들어 일감이 줄어들고 온라인 세미나(웨비나)가 성행하자 '단가 후려치기'를 제안하는 업체가 속속히 등장한 것이다. 웨비나가 현 상황에서는 그나마 최선이지만,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업계 자체가 원가 절감에 물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C씨는 최근 고객으로부터 난감한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웨비나로 진행할 때 고객이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교통비가 발생하지 않고, 집에서 일한다는 명분이다"라며 "20~30%씩 할인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는 50%나 깎아달라고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프리랜서인 이들에게 단가는 '업계의 상도'다. 웨비나가 앞으로 더 확대된다 하더라도 통역 업무를 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단가 조정의 빌미가 될 수 없다는 게 통역사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도 많은 행사가 웨비나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모두가 좋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 (가격 조정은) 서로 지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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