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을 42%에서 45%로 올린다. 1만6000명이 인당 평균 5625만원의 소득세를 더 내게 될 전망이다. 기존 주식에만 적용하기로 했던 비과세 공제한도가 공모 주식형 펀드에도 적용되고, 기준 액수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 극복을 위해 위해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및 납부면제자 기준을 상향하고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30만원 올리며 △기업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도 늘린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20%의 소득세율이 적용되고, 액상형 전자담배에 붙는 개소세는 현재의 두 배 이상 오른다.

정부는 2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0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예년 세법개정안과 비교하면 다방면에서 굵직한 내용이 많은 게 특징이다. 관련 자료 총 300 쪽, 요약 자료만도 4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중 국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큰 주요 내용을 ①부자 증세 ②금융 세제 개편 ③기업 관련 세제 개편 ④민생 세제 개편 등 네 가지 주제로 분류해 정리했다.

①부자 증세…고소득자 소득세 '껑충'

정부가 이날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42%에서 45%로 인상한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연간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소득이 5억원을 초과할 경우 4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을 통해 연간 과세표준 소득이 10억원을 초과하는 이들에게 45%의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는 사람은 1만6000명 가량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대부분 고소득 기업인 등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더 걷히는 세금은 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내게 될 세금을 계산해 보면 5625만원 가량이다.

이로 인해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0년 35%에서 10년만에 2020년 45%로 10%포인트 급증하게 됐다. 지방소득세를 합하면 최고세율은 49.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10위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정부는 △법인을 설립해 소득세를 덜 내려는 '개인 유사법인'에게 '초과 유보소득'에 대한 배당소득세를 과세하고 △신탁제도와 관련해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주체를 수탁자에서 위탁자로 바꾸며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해 누진과세를 적용받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이자‧배당소득 과세특례 상품 신규가입을 원천 봉쇄하는 등 전방위적인 '부자 증세'안을 내놨다.

②금융소득 과세안, 대통령 재검토 지시에 대폭 변경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도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안에서 대폭 변경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개인투자자를 위축시켜선 안 된다"며 금융세제 개편안에 대해 사실상 수정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도차익 기본공제 기준 변경이다. 2000만원 이하의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공제해 주던 것을 상장주식과 공모 주식형 펀드를 합산해 5000만원 이하에 적용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기본공제 5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양도차익에 대해 20%(3억원 초과분은 25%)에 달하는 세금을 새로 물게 되는 이들은 기존 30만명에서 15만명으로 줄었다.

증권거래세를 0.02%포인트 인하하는 시점은 기존 발표했던 2022년에서 2021년으로 1년 당겼다. 금융투자소득세 신설 시점은 2022년에서 2023년으로 1년 미뤘다.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매달 걷으면 투자자들이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던 월별 원천징수 방침은 반기별 원천징수로 변경됐다. 다만 장기 투자에 대한 저율 과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반영되지 않았다.

③ 투자세액공제로 기업 투자 촉진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기업 투자에 대한 세금을 깎아 줘 신규 투자를 유도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는 10개의 투자세액공제를 기업 규모별 기본공제로 통합하기로 했다. 당기투자분에 대한 기본공제율은 대기업 1%, 중견기업 3%, 중소기업 10%로 적용하기로 했다. 신성장기업 사업화 시설 투자 공제율은 대기업 3%, 중견기업 5%, 중소기업 12%로 설정했다.

손해를 보면 세금을 공제해 주는 조세특례제한법상 세액공제 제도의 이월공제기간은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했다.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기간은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자영업자의 세금 부담도 낮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적용 기준을 대폭 상향했다. 간이과세자가 되면 업종에 따라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돼 세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자영업자의 탈세 유인이 커지고 세금 수입이 줄어드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정부가 포퓰리즘을 위해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가세 간이과세는 연 매출이 4800만원 미만인 개인사업자의 세금계산서 발행 의무 등을 면제해 납세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연 매출 3000만원 미만인 간이과세자는 부가세 납부 의무가 아예 면제된다. 정부는 이 같은 연 매출 기준을 간이과세자의 경우 8000만원으로, 납부 면제자는 480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④ '분양권=주택' 소급적용 안하고, 비트코인에 20% 과세

이 밖에도 정부는 다방면에서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여러 세법을 개정했다. 우선 지난 10일 발표한 7·10 부동산 대책과 관련, 기존에는 양도소득세 중과 여부 등을 결정할 때 모든 분양권을 주택 수에 포함하기로 했었지만 이를 법 시행 이후 새로 취득하는 분양권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바꿨다. '소급 적용'등 국민 반발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는 올해만 30만원씩 상향하기로 했다. 총 급여가 7000만원 이하인 사람의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300만원에서 330만원으로, 7000만원 초과 1억2000만원 이하인 사람은 25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1억2000만원을 초과하는 급여를 받는 사람의 한도는 200만원에서 230만원으로 올리는 식이다.

이 밖에도 가상화폐를 매매한 소득이 연간 250만원 이상인 경우, 판 가격에서 취득가액(샀던 가격)과 부대비용을 뺀 '가상자산 소득금액'의 20%를 세금으로 떼 가기로 했다. 다만 혼란을 줄이기 위해 법 시행 전 갖고 있었던 가상자산의 취득가액은 법 시행 전날 시가와 실제 취득가액 중 큰 쪽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납세의무자는 가상화폐 거래소득을 5월 중 연 1회 신고 및 납부하게 된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는 니코틴 용액 1mL당 370원에서 740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른다. 연초의 잎 뿐 아니라 뿌리와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으로 만든 담배에도 개소세를 물리기로 했다.

고소득자·대기업 세금 부담 1조8760억원 늘어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향후 5년간 676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목별로 보면 주식양도소득 과세 확대(1조5000억원) 종합부동산세율 인상(9000억원) 소득세율 인상(9000억원) 등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됐고, 증권거래세율 단계적 인하(-2조4000억원) 투자세액공제 확대(-5000억원)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금액 상향(-5000억원) 등은 세수 감소 요인으로 분석됐다.

계층별로 보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 부담이 1조876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서민과 중산층(연 총 급여 7000만원 이하)의 세금 부담은 1조7688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는 외국인과 비거주자, 공익법인 등 '기타'로 분류된 이들의 세금 부담도 396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납세자연맹 "세법개정안 문제 많다"

납세자연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세법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연맹은 먼저 주식 양도차익 기본공제 금액을 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한 것은 다른 소득에 비해 과도한 혜택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기본공제를 폐지하고 현재 20%에 달하는 세율을 낮추거나, 당초대로 기본공제 기준을 2000만원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금융투자로 입은 손실에 대한 이월공제기간(5년)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처럼 무제한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상향과 관련해서는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 원칙을 위해 부자 증세보다는 39%에 달하는 면세자를 줄여 보편 증세를 실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인상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소득공제 한도 인상으로 4100억원이 지원됐는데 또다시 지원하는 것은 효과도 적고 재정 악화만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동산 세제와 관련해서는 "세금을 올린다고 집값이 안정되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으려고 한 탓에 너무 잦은 세법개정안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전문가도 못 알아볼 지경이 됐다"고 꼬집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