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 미국 정부의 규제로 중국 화웨이의 주문대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게 금지됐다. 화웨이 매출 비중이 큰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대만 TSMC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TSMC와 경쟁하는 삼성전자의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도 컸다.

두 달이 지난 현재 분위기는 예측과는 정반대다. 화웨이 제재 이후 대만 반도체 업체들의 위상만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SMIC 등 자국 업체를 집중 지원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화웨이 없어도 TSMC 이익 79% 급증

美 '화웨이 규제' 두 달…대만 반도체만 웃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만 TSMC는 2분기 매출 103억8500만달러, 영업이익 43억82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4.1%, 영업이익은 78.6% 급증했다. 미국 제재로 TSMC 실적이 곤두박질칠 것이란 전망을 뒤집은 것이다.

TSMC는 미국 기업들과 더 끈끈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TSMC의 2분기 이익이 급증한 배경이다. 애플이 차세대 아이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A14’ 생산 물량을 TSMC의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초미세공정에 몰아준 것이 대표 사례다.

TSMC는 화웨이엔 더 이상 미련을 안 두고 있다. TSMC는 최근 “화웨이와 거래관계를 끊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7일 TSMC를 집중 조명하며 “화웨이 제재를 이겨내고 누가 ‘진정한 왕’인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대만에 본사를 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미디어텍도 화웨이 제재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미디어텍의 스마트폰용 AP 시장점유율은 지난 1분기 기준 20%로 퀄컴(40%)에 이어 세계 2위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하고 TSMC가 생산한 AP를 스마트폰에 주로 썼다. TSMC와의 관계가 끊기자 대안으로 찾은 게 미디어텍의 AP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와 TSMC 간 거래는 규제했지만 미디어텍 같은 제3의 업체 제품을 화웨이가 사서 쓰는 건 막지 않았다. 미디어텍 매출은 증가 추세다. 지난 5월 217억대만달러였던 매출이 지난달 252억대만달러로 16.0% 급증했다. 대만 매체 디지타임스는 최근 “화웨이의 발주 덕분에 미디어텍의 올해 제품 출하량이 300%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위기감 커지는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화웨이 제재의 반사이익을 누리기는커녕 초긴장 상태다. 미·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화웨이가 미디어텍에 앞서 삼성전자에 AP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난색을 보였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대응 전략 때문에 삼성전자는 반사이익을 못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사업) 2분기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4조325억원으로 1분기(4조3562억원)보다 7.4% 적다. 최근 중국 정부가 SMIC 등 자국 반도체 업체에 ‘조(兆) 단위’ 자금을 투입하는 등 지원을 강화하면서 삼성전자가 느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