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없는 뉴딜은 허구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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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투자와 함께 제도개선을 병행, 후속 대규모 민간투자를 유도·촉진.”

한국판 뉴딜이 밝힌 추진전략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국비 114조1000억원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신시장 창출·민간 수요를 견인하는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민간의 혁신·투자를 촉진하는 촉매제로 제시한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기반 구축과 규제 개선과 관련해서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를 했다. 대공황 시대 미국의 뉴딜보다는 낫기를. 발표 전에 문재인 대통령도 만족했다는 ‘한국판 뉴딜’이라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실망스럽다. 어느 나라 경제든 해묵은 숙제가 있기 마련이다. 평상시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과제를 해치우기에는 위기감이 엄습할 때가 적기다. 실제로 이해관계자 간 논란이 심한 개혁은 대부분 전쟁 또는 모두가 부인하기 어려운 위기 국면일 때 이뤄진 경우가 많다.

좋은 말은 다 끌어다놓은 한국판 뉴딜이지만, 결정적으로 위기 때라야만 할 수 있겠다는 구조개혁 과제를 놓쳐버렸다는 공허감이 밀려온다. 화려한 잔치에 먹을 게 별로 없다는 말은 여기에 딱 맞지 싶다.
이번엔 한국판 뉴딜로 ‘소득주도성장’?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기회마저 이 정부는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집스럽게 되살리는 목적으로 한국판 뉴딜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이 맞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운좋게 코로나가 찾아왔다는 듯이 말이다.

정부는 기업보다 일자리에 방점을 찍었다. 디지털·그린 경제를 말하지만 구조전환의 주체이자 민간투자를 해야 할 기업이 처한 입장에 대한 배려는 안 보인다. 이 땅의 기업인들이 꽉 막힌 상황에서 ‘내가 왜 여기서 기업을 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정부가 투자를 한다고 해도 세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한국판 뉴딜이 수요 축과 함께 가장 기본적이면서 본질적인 공급 축, 그 중에서도 기업 축을 빼먹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수요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 정부라도 발벗고 나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공급 과잉, 사업 재편이 문제라면 수요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구조전환을 아무리 외쳐도,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전환을 위한 투자에 나설 처지가 못 된다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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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줄도산’, 한국은 예외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적으로 파산하는 기업이 급속히 늘고 있다. 독일 금융사 알리안츠는 전세계 파산 기업이 작년 대비 20%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예외일까.

한국경제연구원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외부 감사를 받은 비금융기업 2만764개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 수가 지난해 3011개사였다. 2018년 2556개사보다 17.8% 늘어났다. 부실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이들 한계기업부터 무너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타격을 입고 있는 기업이 추가될 것이다. 타격이 일시적인 기업이면 사태가 개선되면서 점차 나아지겠지만, 그렇지않은 기업이면 존폐의 기로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줄도산이 남의 일이 아니다.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
재무 구조가 악화된 기업이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개선해 상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절박하게 들려온다.

사업 재편, 사업 전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고공에서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말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기업에게는 생존을 건 문제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기업이 이런 전환을 위한 도전에 나설 지식·자본·노동 등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려면 고통스러운 내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것도 부족하면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외부와 손을 잡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끝이다. 지금 멀쩡한 기업이라도 최후의 순간,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기는 한계기업과 다를 바 없다.

정치권이, 정부가 ‘내가 왜 여기서 기업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기업인들에게 답을 주기를 바라는 기대 같은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규제를 풀어달라는 기업인들의 요구도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기만 하니 지칠대로 지친 상황일 것이다. 그래도 앉아서 죽느니 뭐라도 해보고 죽겠다는 기업인들이 있다면 기회는 줘야 할 것 아닌가.

코로나19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맞은 기업들은 자발적인 사업 재편에 나설 수 있게 상법·공정거래법상 규제 특례 등을 적용하는 ‘원샷법’의 대상을 모든 업종, 모든 기업으로 확대해 달라고 호소한다. 응답이 없다. 코로나19로 곡소리가 들려오는 항공운송업조차 원샷법의 문턱이 높아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는 판국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어른거린다
지금 미국에서는 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더 위험할지 모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구조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지금 보고 있는대로 중국의 위협이다. 코로나19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의 처지가 상대적으로 낫다고 여기는 것이 다시 기회의 상실로 이어진다면, 우리 앞을 또 무엇이 가로막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이 안도감을 주는 게 아니라 3•4분기, 아니 그 이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최고경영자가 전기차 배터리사를 보유한 그룹들의 최고경영자를 만나면서 보여주는 웃음과 악수가 최후의 만찬 같은 비장함으로 비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산업이 바톤터치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지금의 한국 주력산업들이 줄줄히 무너져버린다면,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정부는 거창한 한국판 뉴딜을 내놨지만 현실은 그냥 앉아서 죽으라는 식이다. 기업이 사업 재편도 맘대로 못하게 해 놓고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이라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따로 없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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