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9일 “회사가 생존해야 조합원도, 노조도 유지된다”며 무조건적으로 투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업계에선 ‘강성노조의 대명사’인 현대차 노조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이날 내부 소식지를 통해 “투쟁도 생산이 잘되고, 차가 잘 팔려야 할 수 있다”며 “아직도 전투적 조합주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합원의 눈과 귀를 가린다면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 지도부가 추진하고 있는 품질혁신 운동을 두고 노조 내 소수계파가 ‘회사와 결탁했다’고 비판하자 이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도 강경 투쟁으로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일부 요구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노조는 전기자동차로 글로벌 시장이 빠르게 전환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내놨다. 노조는 소식지에서 “내연기관차를 고집하면 우리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변화를 부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노조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현대차의 경쟁력을 갖춰나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앞으로 자동차산업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지난해까지 현대차 노조는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이 생기더라도 총 고용인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 감소로 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지만 노조는 퇴직자 숫자만큼 새로 인력을 채용하라고 회사를 압박해왔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노조가 ‘변화를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파업을 감행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월 실용주의 성향의 이상수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직후 “노조는 무분별한 파업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월에는 올해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노사가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공장 간 물량 전환 및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 생산’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현대차 노조의 올해 임금 및 단체교섭 요구안이 진정한 변화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본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기본급 6.5%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말로만 변화’를 외쳤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반대로 노조가 위기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전향적인 요구안을 내놓는다면 “진짜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게 될 수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