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투자자들의 관심은 삼성전자에 쏠려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폭락장 이후 다른 종목에 비해 상승이 힘겨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반기 서버용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펀드매니저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삼성전자에 투자하기 좋은 때”라고 말한다. 7일 삼성전자는 2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다. 이들의 의견을 정리했다.“초격차 유지 어렵다”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은 미세공정이다. 회로 선폭을 얼마나 좁게 만들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미세공정 기술이 발전할수록 반도체 크기는 줄어들고, 전력 효율과 성능은 개선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미세화 공정 혁신을 통해 수십 년간 시장을 지배해왔다. 일본과 대만 업체들은 사라졌다. 지난 1분기에는 업계 최초로 4세대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급 D램 양산 기술을 확보했다. 하반기 본격적인 제품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하지만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사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제일 잘하는 미세공정이 오히려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논리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이 2008년 설정 후 12년째 운용 중인 ‘코리아리치투게더펀드’에는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 삼성전자가 없다. 국내 주식형펀드 대부분이 삼성전자를 담고 있지만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다르다. 강 회장은 “스마트폰 부문에서 하드웨어 혁신은 거의 끝났고, 반도체에서 미세공정 기술 차별화도 내년 하반기면 끝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 공정일 때는 삼성전자가 미세화 공정에서 빠른 속도로 경쟁자들을 제칠 수 있었지만 10㎚ 공정에서는 경쟁자와의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논리다.시스템 반도체에선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따라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더 미세한 공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7㎚ 공정에서 더 미세한 5㎚ 공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5㎚ 기술 경쟁은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TSMC가 삼성전자를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애플은 최근 인텔과 결별하고 맥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 생산을 TSMC에 맡기기로 했다. 강 회장은 “미세공정 기술 경쟁에서 최대 피해자는 삼성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대표 펀드인 코리아리치투게더펀드는 삼성전자 대신 SK머티리얼즈, 이앤에프테크놀로지 등 반도체 소재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 펀드의 수익률은 연초 대비 7.98%, 2008년 설정 이후로는 166.62%에 달한다.“그래도 사야 한다”는 여의도반도체 애널리스트 대부분은 의견이 다르다.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은 크고, 앞으로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쥐고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이 삼성전자 잠정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실적 전망치를 줄줄이 올린 배경이다. 코로나19로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비대면 관련 산업은 오히려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또 삼성전자 주가는 단순히 반도체 가격에 연동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업체 주가는 반도체 가격보다 반도체 출하량을 통해 더 잘 설명된다”며 “2019년 하반기 메모리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수요와 출하량이 반등하면서 메모리업계의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등 세트 부문의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3분기 중 반도체에 대한 본격적인 수요 회복이 나타나고, 주가 반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다.미국에서 애플 등 미국 기술하드웨어 업체와 인텔 마이크론 등 반도체·장비 업종의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이 상승 전환한 것도 삼성전자에는 좋은 뉴스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술 기업의 EPS는 국내 반도체·장비와 기술하드웨어 업종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특히 국내 증시의 이익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는 상황에서 반대로 이익추정치가 상향 조정되는 업종의 주가 프리미엄은 높다”고 분석했다.설지연/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오직 미래만 보고 새로운 것만 생각하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스타트업 육성조직인 C랩에서 꺼낸 얘기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임직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이 건넨 메시지의 골자였다.이날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수원사업장에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에 참여하고 있는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 사장과 노태문 무선사업부 사장, 최윤호 경영지원실 사장 등이 동행했다. C랩은 삼성이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2년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임직원들이 1년간 현업을 떠나 자신이 낸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을 꾸릴 수 있다.이 부회장은 이날 C랩 임직원들과 C랩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사내 벤처 활동을 할 때 어려움이 없는지 등을 묻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선 조언을 구하는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방법’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 등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미래는 꿈에서 시작된다. 지치지 말고 도전해 가자”고 강조했다.스타트업 업계에선 ‘C랩 출신’이란 이력이 ‘훈장’으로 통한다. C랩 출신 스타트업들이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도 C랩의 저력이 드러났다. 인공지능(AI) 뷰티 스타트업인 룰루랩은 2년 연속, 목에 거는 360도 카메라를 개발한 링크플로우는 3년 연속으로 ‘CES 혁신상’을 받았다.C랩은 이 부회장의 ‘동행 철학’을 실현하는 기관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2018년 8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하며 ‘C랩 아웃사이드’를 도입했다. C랩의 지원 대상을 외부로 확대한 프로그램으로 5년간 300개의 외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지난달엔 C랩의 도움을 받아 시장 안착에 성공한 약국 의약품 통합관리 솔루션 업체 ‘e블루채널’이 유튜브에 소개됐다. 편의점 등을 운영했던 50대 주부가 삼성 멘토들과 함께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는 스토리가 눈길을 끌었다.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낸드플래시 반도체 시장이 암흑기에 접어든 건 2018년 하반기부터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정체 등 수요 위축에 공급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면서 낸드 가격은 지난해 2월에만 7% 가까이 추락하기도 했다. 세계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한 업체들은 ‘적자의 늪’에 빠졌다. 견디다 못한 낸드 업체들은 지난해 7월부터 ‘생산공정 효율화’(삼성전자)와 ‘웨이퍼투입량 조절’(SK하이닉스)에 나섰다. 사실상의 감산(減産)이었다.최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서버 SSD(낸드플래시를 이용해 만드는 저장장치)와 노트북 수요가 커지며 낸드 가격은 2018년 말 수준(4.68달러)을 회복했다. ‘플레이스테이션 5’ 등 게임 콘솔의 올해 말 출시를 앞둔 3분기에도 낸드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낸드가 다시 복덩이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5G 확대로 대용량 낸드 수요 커져6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낸드 시장 규모(매출 기준) 전망치는 586억6000만달러(약 70조1500억원)다. 2018년(632억1000만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19년(449억5000만달러)보다 30.5% 증가한 수치다. 내년엔 669억7000만달러, 2022년엔 733억5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2018년 정점을 찍고 위축됐던 낸드 시장의 회복은 SSD 영향이 크다. SSD는 낸드로 만든 데이터저장장치로 서버, PC, 게임 콘솔 등에 활용된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낸드 매출 중 SSD 비중은 42.6%, SK하이닉스는 19.9%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올초부터 SSD 비중을 늘려 지난 1분기 기준 비중을 약 40%로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5세대(5G) 이동통신 확대와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데이터 사용량이 늘면서 올 상반기 구글 아마존 등의 서버용 SSD 수요는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SSD 수출액은 지난 1월 이후 6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100% 이상씩 늘었다. 지난 1분기 기준으론 한국의 SSD 수출(23억7497만달러)이 대만(20억3656만달러)을 누르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SK하이닉스 3분기 낸드 흑자전환하반기 낸드 시장 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서버용 SSD는 상반기 구매업체들이 재고를 일정 수준 보유하고 있어 하반기엔 강력한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신 연말 출시되는 ‘플레이스테이션 5’ ‘엑스박스 시리즈 X’ 등이 낸드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플레이스테이션 5의 SSD 용량은 825GB(기가바이트), 엑스박스는 1TB(테라바이트, 1000GB)다. 스마트폰 한 대에 들어가는 낸드 평균 용량(120GB) 대비 7배 이상 많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플레이스테이션 판매량을 1600만 대, 엑스박스는 500만 대로 추산하면 스마트폰 1억5000만 대가 판매되는 것과 비슷하다”며 “낸드 수요가 2019년 대비 5.8%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오는 3분기엔 8분기 만에 낸드사업에서 흑자 전환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중장기적으로도 낸드와 SSD 수요는 증가할 전망이다. ‘5G 스마트기기 사용량 증가→데이터 처리 용량 증가→데이터센터 건설 확대→데이터센터 서버용 SSD 수요 증대’의 선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서버업체가 요구하는 SSD 용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며 “모바일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하반기 낸드 시장 수급 상황은 우호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삼성, ‘870 QVO’ 등 SSD 신제품 출시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신제품 개발과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낸드 시장 점유율 세계 1위(1분기 기준 33.3%)인 삼성전자는 지난 6월 8조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결정했다. SSD 대중화를 위해 일반 소비자도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는 ‘870 QVO’ 등과 같은 신제품 출시에 주력하고 있다. 이 제품은 4비트 낸드를 사용하면서도 독자 개발한 SSD 컨트롤러와 소프트웨어 등으로 성능을 끌어올린 것이 장점이다.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선보인 128단 4D 낸드 제품 비중을 높여 현재 5위 수준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