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국민 볼펜' 모나미, 문구 1위로 키운 선배 리더십

부친 이어 2代째 가업 이끌어
"세상에 없던 것 만드는 도전정신"
색조화장품 제조업으로 다각화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지금이야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하지만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볼펜은 생소한 물건이었다. 1963년 등장한 국내 최초의 볼펜 ‘모나미 153’은 필기구 분야의 혁명을 불러왔다. 올해는 그 주역인 모나미가 창립 60주년을 맞는 해. 모나미 153은 ‘국민 볼펜’으로 사랑받으며 지난해 누적 판매량 43억 자루를 돌파했다. 경기 용인의 모나미 본사에서 만난 송하경 회장(61)은 장수기업 모나미의 성장 비결로 “국내에 없던 볼펜을 개발해 내놓았던 도전정신”을 꼽았다.

송 회장은 가업을 승계한 2세 경영인이다. 미국 유학을 마친 1986년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창업주인 송삼석 명예회장이 모나미 153 볼펜의 성공으로 일군 기업을 사업 다각화를 통해 명실상부한 국내 1위 문구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 회장은 요즘 제품의 주력 무대를 종이가 아니라 ‘얼굴’로 넓히고 있다. 필기구 제조업에서 축적한 염료 배합 기술력을 발판으로 색조 화장품 제조 사업에 뛰어들면서 ‘제2의 도약’에 나서고 있다.
“無에서 有 창조하는 도전정신이 밑천”
송 회장의 도전정신은 부친이자 창업주인 송삼석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DNA다. 송 명예회장은 1960년 모나미 전신인 회화구류 제조업체 광신화학공업을 설립해 필기구의 심 끝에 금속구를 단 볼펜을 국내에서 처음 개발한 인물이다. 철필(펜촉에 펜대를 끼워 쓰는 필기구)이 주류였던 당시 문구 시장에 잉크가 필요없는 볼펜은 사무 분야의 혁신을 몰고왔다.

송 명예회장이 볼펜의 존재를 처음 접한 건 1962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산업박람회에서였다. 전자계산기를 전시하러 온 일본 회사 직원이 볼펜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편리함에 감탄해 볼펜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볼펜 제조에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은 기술력과 노하우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잉크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점도를 적절하게 조정해야 했고, 팁(볼펜 앞쪽의 뾰족한 부분)과 금속구의 형태와 크기를 정밀하게 가공하는 기술력도 필요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을 곁에서 지켜봤던 송 회장은 “스위스에서 팁 제조 기계를 들여올 때 담당 직원이 관세를 깜빡하고 내지 않아 기계 수입이 지연되는 등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모나미 153은 1963년 5월 1일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나미 153이란 제품명은 사내 공모를 통해 정했다. 프랑스어로 ‘내 친구(mon ami)’라는 뜻의 모나미에 당시 가격이 15원이었다는 점, 이 회사의 세 번째 상품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국민 브랜드 발판으로 ‘고급화’ 전략
1990년대 중반 2세 경영이 본격화된 뒤 송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 주력했다. 송 회장은 “팁 구조의 볼펜뿐 아니라 매직, 프러스펜, 네임펜 등을 출시하며 상품군을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에서 고유명사처럼 쓰는 제품 이름들이 모두 모나미의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국민 볼펜 이미지의 모나미 필기구를 고급화하는 것도 다각화 전략의 일환이다.

모나미는 2015년 12월 홍대점을 시작으로 동천동 본사를 비롯해 동대문 DDP, 용인 에버랜드, 롯대백화점 부산 본점, 인사동 등 다섯 곳에서 모나미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모나미의 주력 제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콘셉트 스토어다. 일부 모나미 스토어에서는 15가지가 넘는 모나미 잉크 제품을 활용해 자신만의 잉크를 배합할 수 있는 ‘잉크 DI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송 회장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 모나미 제품이 취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송 회장은 올해 색조 화장품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난 60년간 축적한 염료 배합 노하우를 활용해 ODM(제조업자개발생산)·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국내외 대형 화장품 기업에 화장품을 납품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경기 군포시에 제조공장을 마련하고 화장품 제조를 위한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권위를 벗어던진 소탈한 리더
송 회장은 다소 외향적인 성격의 부친과 달리 숫기가 없는 편이라는 게 주위의 평가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파격적으로 변신해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모교 송년 행사가 열린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다. 이날 행사의 피날레엔 예고 없이 그룹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로 분장한 인물이 깜짝 등장했다.

무대에 선 인물은 송 회장이었다. 머큐리의 상징 같은 러닝셔츠 차림에 콧수염까지 붙인 송 회장은 마이크를 허공에 뻗쳐 들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했다. 그는 “동창들과 즐겁게 소통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남몰래 연습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송 회장의 평소 경영 스타일도 이와 비슷하다. 직원들에게 비쳐지는 송 회장의 면모는 권위 있는 최고경영자(CEO)보다 후배와 늘 소통하려 애쓰는 자상한 선배에 가깝다. 현지 조사차 해외 출장을 다닐 때면 수행 직원을 제치고 손수 택시를 잡곤 한다. 과거 독일 출장에서 송 회장을 수행했던 한 직원은 “놀라기도 했지만 소탈한 경영자의 모습을 보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더 생겼다”고 했다.
“회사를 가정처럼”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기업문화도 송 회장의 경영철학 가운데 하나다. 송 회장은 “직원들은 보통 30대부터 50~60대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회사에서 보낸다”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생활을 가정 못지않게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경영자로서의 소신”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송 회장을 중심으로 한 직원 회식을 자주 마련했다. 한 달에 한 번 회사 구내식당에서 호프데이를 열고 단합대회를 하는 전통도 이어지고 있다.

송 회장은 직원들이 애완견을 데리고 출근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휴식 시간에 반려동물과 보내는 게 업무 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송 회장 스스로도 동물애호가라고 한다. 로트와일러, 저먼 셰퍼드 등 대형견을 직접 키우고 있다. 한국애견협회가 주최하는 도그쇼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용인에 마장을 운영하며 승마선수들을 후원하고 있다. 8년 전 처음 승마를 시작한 그는 “높이 170㎝가 넘는 말 어깨에 올라타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말이 점핑해 4m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짜릿한 경험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 송하경 모나미 회장

△1959년 서울 출생
△1984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졸업
△1986년 로체스터대 경영대학원 졸업
△1989년 모나미 상무
△1993년 모나미 대표이사 사장
△2018년~ 모나미 대표이사 회장


민경진/이정선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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