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의 공간(空間)

재택·원격·유연 근무 확산에도
'사무실 존재감'은 오히려 커져

집과 직장 '틈새' 파고들며 진화
동료와 휴식하고 결속력도 다져
혁신적으로 생산성 끌어올릴 것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코로나19는 일상 속 모든 공간을 재구성하고 있다. 사무실도 예외가 아니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일터의 의미를 더 부각시킨다.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오랜만에 회사를 찾았을 때 더 편안하게 동료와 대화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글은 일찌감치 ‘스마트 오피스’ 실험을 해왔다. 사진은 2018년 문을 연 스위스 취리히의 구글 오피스. 사람들과 대화하는 공간은 열기구로 가득한 놀이공원처럼 설계했다.  /구글  제공

코로나19는 일상 속 모든 공간을 재구성하고 있다. 사무실도 예외가 아니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일터의 의미를 더 부각시킨다.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오랜만에 회사를 찾았을 때 더 편안하게 동료와 대화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글은 일찌감치 ‘스마트 오피스’ 실험을 해왔다. 사진은 2018년 문을 연 스위스 취리히의 구글 오피스. 사람들과 대화하는 공간은 열기구로 가득한 놀이공원처럼 설계했다. /구글 제공

2020년 봄은 입사 첫날의 벅찬 기분을 소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재택근무 덕이다. 기자 집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그러나 침대에서 책상까지 가는 시간은 1시간 이상 걸렸다. 지치고 늘어지고…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은 건 지옥이었다. 일이 끝나도 퇴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한참 만에 다시 출근할 수 있게 된 기쁨은 입사 첫날의 그것과 비슷했다. 모든 게 새롭고, 많은 것이 반가웠다.
코로나19와 ‘사무실의 종말’
코로나19가 가져올 수많은 변화의 핵심은 공간이다. 사는 곳, 먹는 곳, 노는 곳 모두 전환기다. 사무실에 대한 논의가 그중 가장 뜨겁다. 기업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비용을 공간에 쏟아부은 것 같다고 말한다. ‘굳이 이렇게 많은 직원이 한 공간에 모여 있을 필요가 있었나.’ 허탈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24시간 초연결 시대에 근사한 사무공간을 마련하느라 투자한 비용이 아깝다는 얘기다. 수많은 기업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거나 검토 중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슬랙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이 원격근무 확대를 발표했고, 도요타도 재택근무 대상자를 전 직원의 3분의 1까지 늘렸다.

‘집에서 집으로 출근하고, 집에서 집으로 퇴근하는 시대’에 사무실은 사라질까. 틀렸다. 코로나19는 역설적으로 더 멋진 사무실을 요구한다. 어쩌다 한번 오는 회사라면, 정해진 날에만 올 수 있는 공간이라면 조금 더 특별해야 한다. “어쩌면 오피스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인류의 삶을 떠받쳐온 제3의 장소
사무실은 산업사회를 거치며 진화했다. 인류 최초의 사무실은 이집트에 있었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 매케레 묘에서 발견된 곡물창고 모형이 근거다. 벽으로 나뉜 방에 수십 명의 서기가 농작물 출고량을 기록했다. 근대적 의미의 사무공간은 1800년대 유럽에서 등장했다. 주택을 개조해 사업가들이 한두 명의 보조 사무원과 일했다. 1900년대에는 공장 노동자처럼 수백 명이 붙어 앉아 서류 작업을 했다. 인텔리전트 빌딩이 도입된 건 2000년대. 사원증이라는 만능열쇠를 목에 걸면 회사 안에서 밥 먹고 운동하고 아이를 돌볼 수도 있게 됐다.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1989년 발간한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집을 제1의 공간, 직장 또는 학교를 제2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인류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장소를 ‘제3의 장소’라고 했다. 집도 직장도 아닌 중간지대.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이뤄지고, 누군가와 교류하려는 욕구를 채워주는 공간이다.

유럽의 커피하우스, 골목길의 펍, 미용실 등이 모두 제3의 장소다.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스타벅스의 철학도 뿌리는 제3의 장소다. 한국에선 시골 장터와 다방 정도가 되겠다. 회사원들이 퇴근 후 부장님 몰래 가던 호프집을 포함해서.

제3의 장소가 1980년대 도시사회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건 집(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의 구분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가족과 직장, 틈새공간이라는 세 개의 영역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편안함을 느낀다. 다시 코로나19 이후를 고민한다. 집과 직장의 구분이 희미해졌다. 제1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의 의미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더 끈끈해질 것이다
‘오피스의 종말론’ 반대편엔 ‘오피스의 황금기’를 말하는 낙관론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무공간이 곧 제3의 공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회사가 도피처가 된다는 얘기다.

동료들 간의 관계는 더 끈끈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유 오피스 위워크의 한 컨설턴트는 “현대인은 직장 동료를 가족보다 더 자주, 오래 보면서 서로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지 모르고 지내왔다”고 했다. 《오리지널스》의 저자이자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도 “팬데믹 후 다시 만난 동료들은 말 한마디도 더 의미있게 하고, 개인의 안부를 묻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악수를 하지 못하고, 마스크를 쓰면서 실제 만남에선 상대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더 오래 마주칠 것이라는 휴머니즘적 분석도 있다. ‘코로나19로 영원한 재택근무를 보장하겠다’는 트위터는 직원들이 재택근무 시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동료끼리 돕는 ‘부엉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잡스가 건물에 화장실 1개 고집한 이유
사무실은 이제 기존의 제3의 공간들과 경쟁해야 한다. 스타벅스처럼, 호프집처럼 일 자체가 목적인 공간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떠들고 휴식을 취하고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것이 직원들의 소속감과 로열티,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미리 알았던 것 같다. 픽사 인수 후 그는 회사 건물에 화장실을 한 개만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우연한 만남과 임의적 협력을 촉진하는 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루에 한 번 이상 가는 화장실을 건물 중앙에 두고 직원들을 만나게 했다. 창조적 생각은 지루한 미팅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에서 온다는 걸 그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미국 3대 통신사 블룸버그 뉴스룸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모여 수다를 떠는 공간이 있다.

우리는 사무실을 진화시키는 동시에 늘 탈출을 꿈꿨다. 하지만 통신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재택근무는 자리잡기 어려웠다. IBM, 야후 등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 실험에 실패했다. 이유는 비슷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실제로 가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야후는 2013년 재택근무 금지령을 내리며 이렇게 밝혔다.

'제3의 공간' 된 오피스…스타벅스와 경쟁하라

‘사람들은 결국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 더 협력적이고 혁신적이다.’

destinybr@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