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 국산화 뜯어보니…

액체 불화수소 日 대체 성공했지만 폴리이미드는 실패
초고순도 기체 불화수소, 공정 투입 위한 '테스트 단계'
정부 "전화위복" 자평…학계·산업계선 "섣부른 축배"
소·부·장 독립 '절반의 성공'…포토레지스트 日 의존 여전히 90%

지난해 6월 30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디스플레이 공정용 플루오린폴리이미드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는 산케이신문 보도가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규제 시행(7월 4일) 전 조금이라도 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구매 담당 임직원들을 일본을 비롯한 해외로 급파했다. 재고로 버틸 수 있는 기한은 약 두 달이었다. 일본 정부가 그해 8월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버티기 어려웠다는 게 반도체 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정부는 ‘국산화’를 앞세워 소재·부품·장비산업(소부장) 지원에 나섰다. 그리고 1년. 일부 성과는 있었다. 일본산과 대등한 품질의 액체 불화수소를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EUV(극자외선) 노광공정용 포토레지스트와 ‘초고순도’ 기체 불화수소의 국산화 소식은 아직 없다. “조달처를 다변화해야 하지만 일본과의 협업을 무조건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산업계와 학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액체 불화수소는 국산화 성공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정책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난 1년 기습적인 일본의 조치에 흔들리지 않고 정면돌파하면서 전화위복 계기가 됐다”며 “단 한 건의 생산차질이 없었고 핵심 품목의 안정적 공급체제가 구축되는 등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물론 일부 성과는 있었다. 수출 규제 품목에 포함됐던 불화수소의 경우 액체 제품은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액체 불화수소는 웨이퍼(반도체 원판)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습식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전엔 일본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 등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납품했다. 하지만 규제 이후 국산화 노력이 진행됐고, 올초 솔브레인, 램테크놀러지 등이 대등한 제품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일본 제품과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개발·제조가 액체보다 어려운 기체 불화수소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SK머티리얼즈가 지난 17일 순도 99.999% 제품을 양산한다고 발표했지만 업계에선 수출 규제 이전에 활용했던 일본산(産) 제품 대비 ‘순도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체 제품을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선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순도가 낮은 게 사실”이라며 “공정에 정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테스트 중”이라고 설명했다.

포토레지스트 국산화 갈 길 멀어

불화수소와 함께 수출 규제 품목에 포함된 EUV 노광장비용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는 ‘더 더딘 상황’이란 평가가 나온다. EUV 노광장비는 삼성전자가 주력하고 있는 5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제품이다. 이 때문에 EUV 노광장비용 포토레지스트 조달이 끊기면 삼성전자가 대만 TSMC와 벌이고 있는 경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동진쎄미켐 등이 EUV용을 개발 중이지만 양산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JSR, 신에쓰화학 등 일본업체 제품을 계속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지난 5월까지 일본산 수입액은 2억7474만3000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이 밖에 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주로 쓰이는 플루오린폴리이미드와 관련해서도 일본 의존도는 74%다. 국내 업체들은 일본 스미토모화학 제품을 여전히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분업하면 136조원 부가가치 창출”

산업계와 학계에선 ‘국산화’ 프레임에 갇혀 일본 제품을 무작정 배제하고 일본과 갈등국면을 이어가는 것은 ‘득 될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체 불화수소, EUV 포토레지스트처럼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기 어려운 품목이 200여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품질 좋은 제품을 쓴다는 전략을 갖고 일본 제품도 여러 조달처 후보 중 하나로 놓고 활용해야 한다”며 “특정 국가 제품을 무조건 배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도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개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 “한·일 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역설적으로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라며 “한·일 분업체제를 전체 제조업으로 확대하면 부가가치가 1233억달러(약 136조원)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황정수/구은서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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