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시장에 무슨 일이…

흰우유 판매, 매년 적자인데도
연동제 탓 원유 더 비싸게 사줘야
일방적 농가보호에 소비자도 피해
올 상반기 급식과 외식으로 소비돼야 할 우유가 남아돌면서 우유업체들이 일제히 30~50% 할인 이벤트에 나서고 있다. 26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매대에 진열된 우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올 상반기 급식과 외식으로 소비돼야 할 우유가 남아돌면서 우유업체들이 일제히 30~50% 할인 이벤트에 나서고 있다. 26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매대에 진열된 우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우유가 남아돈다. 수년째 그렇다. 올해 들어서는 더 심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식, 급식이 급격히 줄면서 원유 초과 생산량이 더 늘었다. 2~3개 묶어 싸게 파는 우유 패키지 상품이 시중에 넘쳐난다. 서울우유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유업계 상위 10개사는 지난해 흰우유 부문에서 모조리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수백억원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낙농가에서 원유를 더 비싸게 사야 할 판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26일 유업계에 따르면 낙농가와 우유생산업계 대표자들은 지난 25일 ‘원유 기본가격 조정협상위원회’ 회의를 열었으나 팽팽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올해 우유원액 납품가격을 정하기 위한 이 회의는 지난달 29일 1차 회의 후 벌써 다섯 번째 열렸다. 낙농업계는 “지난해 생산비가 올랐으니 원칙에 따라 L당 21~26원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유생산업계는 “국가적 재난 사태인 만큼 납품가격을 동결 또는 인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내 25개 우유업체는 2013년부터 시행된 ‘원유가격 연동제’에 따라 시장 수요·공급에 상관없이 할당된 원유를 생산비 상승분을 고려한 가격에 낙농가에서 사줘야 한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구제역 파동 후 낙농가를 돕기 위해 2013년 마련된 제도다. 이런 가격시스템 때문에 낙농가는 우유 수요가 감소해도 공급량을 자발적으로 줄이지 않는다.

통계청과 글로벌 낙농컨설팅업체인 CLAL에 따르면 한국의 원유 조달비용(지난해 기준)은 L당 1034원으로 일본(1044원)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뒤는 미국(479원) 유럽연합(448원) 뉴질랜드(397원) 순이다. 전국 6100여 개 낙농가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25.7%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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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를 키워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업은 아무나 못 한다. 젖소 65마리를 키워 연간 1t의 원유를 생산하는 농가를 기준으로 진입 비용은 최소 15억~20억원이다. 그러나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로부터 생산량을 할당(쿼터제)받아야 한다. 안 되면 기존 농장에서 L당 50만~70만원을 주고 ‘원유를 생산할 권리’를 사야 한다. 이 때문에 원유 1t을 더 생산하려면 쿼터값에다 젖소, 땅값, 시설비, 사료비까지 총 20억원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한국에선 남는 장사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낙농가의 수익률은 수년째 25%를 웃돈다. 일본(14%) 미국(11%) 뉴질랜드(13%)보다 훨씬 높다. 농가당 평균 순이익은 1억1210만원. 해외 낙농가들이 “한국에서 낙농업 하는 게 꿈”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생산량을 전부 팔 수 있고, 매년 올려받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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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값 매년 왜 이러나

우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 가격을 두고 낙농가와 우유업계가 지난 5월 말부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우유 소비가 줄어 타격이 커진 유업계는 ‘원유값 동결 또는 인하’를 주장하고, 낙농가는 “원칙에 따라 작년 생산비가 오른 만큼 L당 21~26원을 올려달라”고 하고 있다. 원유 가격 인상 폭을 정하는 협의체인 ‘원유 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는 낙농 관련 조합장과 생산자 대표, 유업체 대표 등이 참석해 5차에 걸쳐 회의를 열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오는 30일 열리는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가격을 정하게 된다.

낙농가와 유업계는 매년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하고 있다. 수십 년째 가격을 두고 양측의 극단적인 대립이 되풀이되자 정부는 매년 우유 생산비 증감분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원유 가격을 결정하기로 했다.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가 도입된 배경이다. 당시 구제역 직후 낙농가가 어려움에 처했고 낙농가를 함께 살리자는 취지로 기업들도 합의했다.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2013년부터 우유값은 매년 5월 말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우유 생산비에 따라 증감률이 ±4% 이상이면 협상을 통해 10% 범위에서 조정된다.

“밑지고 파는 우유 언제까지…”

낙농진흥법에 따라 우유회사들은 계약된 농가에서 생산한 원유를 전량 사줘야 한다. 유업계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출산율 하락과 인구 감소로 우유 소비층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매입한 원유의 15% 이상이 남아돌고 있어 버리지 못하는 우유를 30~50% 할인된 값에 마트에서 팔고 있다. 대형마트에는 2개 묶음 기준으로 3290~4750원의 우유가 등장했다. 3개 묶음까지 나왔다. 최저가 기준 100mL당 183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우유회사가 낙농가로부터 사오는 원유 100mL 시세는 103.4원. 물류비와 가공 포장비를 감안하면 팔면 팔수록 적자다.

공멸하기 전에 대안 마련해야

유업계의 실적 악화는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상위 10개 우유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9%로 떨어졌고, 올 1분기에는 2.5%를 기록했다. 식품회사 평균 영업이익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열 곳 중 네 곳은 적자였고, 흰우유 부문 매출은 열 곳 모두 적자다. 10개사의 적자 규모는 연간 800억원이 넘는다.

반면 낙농가의 생산비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환경 기준에 맞춘 설비 투자와 고급 사료 사용, 인건비 증가에 따라 5% 안팎 매년 올랐다. 농가당 수익도 해마다 증가세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비가 오르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 굳이 생산비를 줄일 이유가 없다”며 “왜곡된 법이 농가를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했다”고 말했다.

업계와 학계는 해외처럼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제안하고 있다. 흰우유로 쓰이는 70%의 원유는 기존처럼 원유가격연동제를 유지하되, 가공유와 치즈 버터 등으로 쓰이는 용도가 다른 일부 원유는 가격을 수요에 맞게 달리 해달라는 것이다. 수요 변화에 따라 전국 농가가 함께 생산량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인배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일본 유럽 미국 등은 수요 감소 시의 리스크를 유업체와 생산자가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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