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블레이드러너 2049'로 본
4차 산업혁명의 명암

'휴먼 로봇'에 밀려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는 세상

원하는 기능대로 만들어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리플리컨트'들의 시대
AI 진화의 끝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맞춤형으로 주문 가능합니다. 채굴지에서 사용하실 거면 지능이나 애정, 매력에 돈을 쓰실 필요는 없죠. 접대형 모델을 추가하신다면 모를까.” 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엔 리플리컨트 구매를 위한 상담 장면이 나온다. 리플리컨트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형 로봇이다. 2049년 기업들은 인간을 채용하는 대신 업무에 최적화된 리플리컨트를 구매한다. 사는 것도 쉽지만 폐기도 쉽다. 리플리컨트 독점 제조기업인 월레스사(社)는 자신있게 외친다. “리플리컨트를 많이 보유할수록 인간의 삶은 윤택해질 겁니다.”

리플리컨트 경찰 K

AI 진화의 끝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 분)는 구형 리플리컨트 제품을 ‘퇴직’시키는 업무를 맡은 특수경찰이다. 퇴직을 거부하며 도망친 리플리컨트를 찾아내 강제로 폐기하는 일을 한다. K 또한 리플리컨트다. 인간들에겐 ‘껍데기’라고 조롱받고, 리플리컨트들은 그를 꺼린다. K는 둘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다. K가 사는 곳은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그가 타고 다니는 스피너(비행자동차)는 자율주행 차량이다. 손을 안 대도 알아서 움직인다. 스피너에 부착된 드론은 음성 인식으로 촬영 뒤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다. 퇴근한 K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 분)도 사람이 아니라 월레스가 제작한 홀로그램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해드립니다’라는 광고 문구로 여기저기에서 팔리는 제품. K에게 조이는 유일한 가족이자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오프월드’는 인간의 유토피아

영화 속에서 유토피아처럼 언급되는 ‘오프월드(우주 식민지)’는 상류층 인간들이 오염된 지구를 떠나 이주한 곳이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신기술 도입으로 생산 효율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지자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는 인간들이 옮겨갔다. 리플리컨트가 대신 일하기에 인간은 노동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현실에서도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경제 패러다임이 크게 뒤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낙관적 전망은 산업 구조가 선진적으로 전환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평균적인 삶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란 예측이다. 영화 속 월레스사는 유전공학(GM) 식량을 연구해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한다. 구형 리플리컨트 업체를 인수해 인간에게 복종하는 신형 리플리컨트 개발에도 성공한다. 월레스 회장은 “우리가 문명의 도약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월레스의 남은 바람은 여러 해 동안의 연구개발(R&D)에도 아직 확보하지 못한 리플리컨트 생식 기술을 개발하는 것뿐이다.

평소처럼 폐기 업무를 진행하던 K는 우연히 한 구형 리플리컨트 유골에서 출산 흔적을 발견한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해당 생식 기술로 태어난 아이를 찾아 나선 K. 아이가 겪은 일들이 자신의 오랜 기억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홀로그램 연인인 조이는 K가 바로 그 아이임을 확신한다. “당신은 특별해. 제작된 게 아니라 태어났잖아.” ‘특별하다’는 말에 늘 덤덤하던 K도 감정의 동요를 보인다.

지구에 남겨진 사람은…

오프월드 이주권을 얻지 못해 지구에 남은 인간들도 있다. 이들은 리플리컨트와 뒤섞여 고된 삶을 산다. 기술 혁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일각의 비관적 전망이 영화 속에 나타난 것이다.

기술 혁신이 만들어낸 실업을 ‘기술적 실업’이라고 한다.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면 트럭 운전사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드론 배송이 실현되면 택배기사들이 실직자가 되는 식이다. 일자리가 사라져 소득을 잃는 사람이 많아지면 경제의 큰 축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노동을 통한 소득→소득을 바탕으로 한 소비→경제 활성화(사회 유지)로 이어지는 경제 순환 구조 자체가 엉켜버리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발생할 실업자들의 재교육과 소득 보장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부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각에선 ‘로봇세’를 걷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람 대신 로봇을 사용하는 기업에 로봇 숫자만큼 세금을 부과해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쓰자는 것이다. 로봇세가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기업의 기술개발 의지를 꺾어 제2의 ‘붉은깃발법(19세기 후반 자동차 속도가 마차보다 빨라선 안 된다고 정했던 규제)’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신기술 확보 나선 월레스

월레스사가 생식 기능을 갖춘 구형 리플리컨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상황은 긴박하게 흐른다. 월레스는 이 기술이 새로운 혁명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본다. 신기술 확보를 위해 이른바 ‘기적의 아이’를 추적한다. 그 시각 K는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되는 인물의 흔적을 비밀리에 찾아 나선다.

AI 진화의 끝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소개한 ‘콘드라티예프 파동’<그래프>에 따르면 경기는 45~60년의 기간을 두고 크게 순환한다. 이 순환을 만드는 건 기술 혁신이다. 통상적으로 제품을 개발해 표준화될 때까지 기업 매출은 증가한다. 그래서 이 시기엔 기업가의 혁신 동력이 약하다. 하지만 시장에서 품질 표준이 형성되고 제품이 ‘일반적인 상품’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비자는 열광에 대한 대가로 추가금을 낼 의향이 없다. 위기감을 느낀 기업들은 신기술에 투자하고, 혁신이 이뤄지면 새로운 활황이 시작된다. 1780년대의 섬유산업, 1840년대 증기기관과 철도, 1890년대 전력, 1940년대 자동차, 1990년대 컴퓨터 기술이 그렇게 출현했다.

월레스가 생식이라는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도 기존 리플리컨트 제품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혼란을 우려한 정부가 월레스를 막아선다. 월레스의 직원은 정부를 향해 답답하다는 듯 외친다. “위대한 혁신이 뭐가 두려워서? 빗자루 따위로 거센 파도를 막진 못해.”

K의 마지막 선택은

아버지를 수소문하던 K는 결국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를 찾아낸다. 데커드는 과거 리플리컨트와의 사랑을 통해 ‘기적의 아이’를 생산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겠다는 목적 아래 자식을 버리고 잠적했다. K는 자신이 당신의 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데커드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다.

혼란스러운 K 앞에 한 무리의 리플리컨트들이 나타난다. 데커드와 함께 인간들을 향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던 세력이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K는 제 것이라고 여겼던 기억이 사실은 자신이 실제 겪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리플리컨트 제작 과정에서 삽입된 가짜였다. K는 ‘기적의 아이’도 ‘혁신의 씨앗’도 아니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평범한 리플리컨트였다. 리플리컨트 반란군은 K에게 데커드를 폐기해 달라고 요청한다. 기적의 아이의 아버지인 데커드가 정부와 기업의 ‘타깃’이 된 이상 자신들의 반란 계획이 밖으로 알려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K는 다른 선택을 한다. 데커드를 없애는 대신 진짜 ‘기적의 아이’의 거처로 그를 안내한다. 데커드가 자신의 딸과 처음으로 손을 맞대는 순간, 가동 기한이 다 된 K는 한쪽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자신이 특별하길 바랐던 리플리컨트 K가 가장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결국 이 영화는 곧 다가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AI가 동료나 연인, 가족이 되는 세상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인간다움’은 무엇일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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