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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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실직, 다시 취업을 반복하며 매년 실업급여를 '타 먹은' 사람이 2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실업자가 크게 늘어난 게 1차 원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많아진 실업급여에 눈독을 들인 청년 근로자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든든하게 버텨줘야 할 고용보험기금은 거꾸로 실업급여와 고용유지지원금 급증으로 올해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처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종사자들로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 만큼이나 '실업급여 중독'이 만연시킬 수 있는 '복지병'에 대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복지 함정'에 발 들여놓은 한국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들어 4월까지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직전 3년간 3회 이상 수령한 사람만 2만942명이다. 실직 전 6개월만 일하면 4개월간 실업급여를 탈 수 있어 '취업→실직→취업'을 거듭하며 '꾸준히' 받은 사람들이다. 직전 3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2018년 3만4516명, 작년 3만6315명이었으나 올들어 4개월만에 2만명을 넘었다. 이 속도라면 연말까지 6만3000명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다.

올해 반복 수급자가 두배 가까이 늘고 있는 것은 코로나 실업대란 외에도 작년 10월 실업급여 지급비율 상향(퇴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50%→60%), 지급기간 연장(최대 240일→270일)의 영향이 컸다. 실업급여 하루 하한액도 높아져 실업급여 월 하한액(181만원)이 월 최저임금(179만원)을 앞질렀다. 편의점 '알바' 등으로 최저시급을 받는 청년들로서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실직 당해 실업급여를 받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된 셈이다.

코로나 위기 후에도 계속될 수 있는 '복지 함정'의 검은 그림자가 본격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몇 번을 반복수급해도 제한이 없는 데다 보험료 누진적용 등 페널티도 없는 제도의 맹점 △1년 이상 계약한 근로자에게도 2년차 연차수당을 주게 해 고용주들이 단기계약(1년 미만)을 선호하게 한 부작용 △제발로 걸어나가더라도 '권고사직' 형식으로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해주는 온정적인 고용문화 등도 문제라고 짚는다.

◆덴마크의 강력한 재취업 프로그램

실업급여 중독 현상이 이처럼 잘못된 정책 설계에 원인이 있다면 개선책을 위해 벤치마킹할 나라를 찾는 게 급선무다. 이런 점에서 덴마크가 단연 눈길을 끈다. 기업은 근로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반면, 실직자들은 탄탄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대부분 재취업에 성공하는 덴마크식 유연안정성(Flexicurity=Flexible+Security)은 훌륭한 모범사례로 수없이 언급돼왔다.

다만 한국에 실질적 가이드라인이 되지 못한 것은 실업급여 지급기간(통상 2년, 최대 3년), 지급비율(직전 소득의 최대 90%) 등이 따라하기엔 너무나 관대하기 때문일 테다. 과거 9년이었던 지급기간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그나마 2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런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짜기 위해 국민들이 모두 함께 기여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한 배경이다. 덴마크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46% 가량으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한국은 이제 20%에 턱걸이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도 실업급여 중독의 확산을 막을 아이디어는 덴마크 사례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다. 실업급여 중독이 이제 한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더 주목해볼 부분이다. 덴마크에선 실업급여 수급자의 권리와 의무를 아예 법제화했다. 2년간의 급여 수급권과 함께 6주간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법령이 보장한다.

또 100개에 이르는 기초자치단체에 일자리센터(Job Center)를 두고 지속적인 취업 인터뷰를 통한 새 직장 알선, 직업능력 개발을 돕는다. 직업훈련은 프로그램수만 2200여개에 이른다. 심지어 학위취득 과정도 제공한다. 이 비용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절반씩 분담하며, 지자체의 재취업 실적이 좋을수록 중앙정부 지원을 늘려주는 인센티브도 있다.

만약 실직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일자리센터의 훈련이나 재취업을 거부하면 실업급여 수급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상담사가 추천한 세 곳의 일자리를 거부하면 실업급여를 중단하는 식이다.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끊임없이 제출해야 한다. 어디 어디에 입사지원서를 냈다는 자료만 이메일로 제출하면 쉽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 '고용보험 확대'에만 매몰돼선 안돼

덴마크 정부는 재취업 지원을 위해 실업자들을 밀착관리하며 관대한 복지체계에 무임승차하거나 실업급여에 중독될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관련 행정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용시장의 '페어 플레이'에 대한 민·관의 신뢰가 기초를 이루고 있는 만큼 그런 비용은 사회 전체가 수긍하며 받아들인다. 3년에 3회 이상 실업급여를 탄 2만여명의 한국인들이 해당 기간 동안 1인당 1320만원씩 받아갔다는 뉴스가 사회의 신뢰를 허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다시 돌아와 우리의 고용보험기금은 화수분처럼 샘솟기는커녕 곧 바닥을 드러낼 전망이다. 연간 10조원 가량 유지해온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2018년부터 적자를 보인 데다 코로나 실직으로 급여 지급이 폭증하면서 금세 고갈될 운명이다. 그런데도 재원 마련, 기금 건전화 방안, 수급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뒤로 돌리고 그저 '전 국민 고용보험'이란 구호 속에 고용보험 대상 확대에만 골몰하고 있는 게 정부와 여당의 모습이다.

고용보험 확대라는 고용의 '안정성' 강화는 '유연성' 확대와 궤를 같이 해야 국내 노동생산성과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안정성은 수급액, 기간 등 양적인 부분 못지 않게 덴마크 사례처럼 좀더 시스템을 잘 갖춘 재취업 프로그램을 튼튼히 짜는 식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라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0.8%씩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는 것 아닌가. 더이상 양적인 고용보험 확대에만 매몰돼선 안된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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