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은 25일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저인플레이션(저물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세종대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해고나 매출 급감을 경험한 경우, 극단적 위험회피 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 세이버'(super saver)가 증가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슈퍼 세이버의 등장에 따라 "해당 경제주체의 재무건전성은 개선될 수 있지만, 소비와 투자 회복이 더뎌지고 이는 다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확산하는 비대면 온라인거래도 물가를 낮추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비대면 온라인거래 확산은 거래비용을 절감하고, 업체 간 경쟁을 주도해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감염병 확산으로 생산차질을 경험한 기업들은 무인화나 자동화를 서두를 수 있고, 생산성이 개선되고 인건비가 절감되면서 물가 하방압력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물가안정목표(2%)를 밑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둔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올해 1% 중반이었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코로나 사태 이후 4월엔 0.1%로 낮아진 데 이어 5월엔 0.3%를 기록했다. 이에 1~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에 이어 물가안정 목표(2%)를 밑돌고 있다.

이 총재는 "코로나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아 국내외 국제유가 회복세는 완만할 것으로 판단돼, 당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 내외의 낮은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며 "내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이 사라지고 경기가 점차 개선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보다 높아지겠지만, 목표 수준으로 수렴하는 속도는 상당히 더딜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유수입물가는 지난 4월 원화 기준으로 69.1% 하락한 데 이어 5월에도 54.4% 내렸다.
올해 소비자물가가 물가안정목표(2%) 수준을 밑돌고 있다. (사진 = 한국은행)
올해 소비자물가가 물가안정목표(2%) 수준을 밑돌고 있다. (사진 = 한국은행)
◆ "저물가에 물가안정목표제 유지 고민…대체 통화정책 모색"

이처럼 저물가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만큼,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는 게 적합한 지에 대한 우려도 다시금 나타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그는 "물가안정목표제를 저물가 상황에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세계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구체적 해법에 대해선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물가안정목표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 및 활용하고, 대체할 수 있는 통화정책 체제를 모색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주열 총재는 창립 70주년 기념 EBS 다큐멘터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디플레(경기침체 속 물가하락)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물가안정목표제가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 고민이 된다"고 발언했다.

물가수준목표제와 평균물가목표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해선 "두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물가수준이 목표를 이탈햇을 경우엔 그것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선 급격한 정책변화가 필요하다"며 "그러다 보면 통화정책의 안정성이 유지될 수도 없고,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 경기변동성을 오히려 더 키운다는 점이 지적된다"고 설명했다.

완화적 통화정책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을 초래한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이 총재는 "그간 진정 기미를 보였던 주택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우려의 시각으로 현재 바라보고 있다"면서도 "최근의 경기와 물가 상황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산가격을 포함한 금융시장에서의 불균형 위험은 거시건전성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면서 대처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 의지가 매우 강한 만큼, 시장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