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앞)이 23일 경기 수원 사업장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해 AI·IoT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앞)이 23일 경기 수원 사업장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해 AI·IoT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경영 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자칫하면 도태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경기 수원 사업장에서 열린 소비자가전(CE) 분야 사장단 간담회에서 꺼낸 얘기다. ‘한계’ ‘도태’와 같은 단어를 써가며 임직원들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부회장의 최근 발언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교적 온건했다. “위기와 기회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자”와 같은 격려성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발언 수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지난 19일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선 “가혹한 위기 상황”이란 표현을 썼다. 지난달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선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최근 현장 경영 행보를 이어가면서 절박하고 답답한 심경을 잇따라 내비치고 있다”며 “대내외 여건이 간단치 않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삼성이 변곡점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 한·일 외교 갈등과 같은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시장에서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은 삼성전자의 주력 시장이며 일본은 반도체 소재 및 부품의 핵심 공급처다.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급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실적 감소 등도 삼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도 녹록지 않다. 오는 26일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지 판단하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다. 강제성은 없지만 지금까지 검찰은 심의위 판단을 거스른 적이 없다. 기소가 확정되면 이 부회장은 2~3일에 한 번꼴로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경영 활동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워진다.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열린 CE 분야 사장단 간담회에는 김현석 CE 부문 사장, 최윤호 경영지원실 사장, 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 부사장, 강봉구 한국총괄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 부회장의 52번째 생일이었다.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의 잇단 현장 행보에 대해 총수로서 책임경영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 부회장은 사장단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제품 개발 현황 등을 점검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