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포장 금지법' 일방 추진하다 백지화된 까닭은

영전한 환경운동가들 - 장·차관에 靑 환경비서관도 꿰차
文정부서 입김 세져 - 물관리·탄소배출권 사업 넘겨받아
기업들은 '패싱 - 업계 의견수렴 없어…시행 직전 '통보'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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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 할인판매를 금지했던 환경부의 일명 ‘재포장 금지법’ 논란은 촌극으로 끝났다. 한국경제신문 등의 보도로 식품·유통업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지 이틀 만에 백지화 결정을 내려서다. 다른 부처 공무원들은 “그렇게 중요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소통도 하지 않는 모습에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유통업계 등 기업 관계자들은 “환경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투쟁에 방점을 두는 환경운동권 출신들이 환경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요직 장악한 환경운동권 출신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환경부 장·차관은 모두 환경운동가가 차지했다. ‘환경부 산하기관 블랙리스트’ 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은경 전 장관은 지속가능성센터 지우 대표를, 안병옥 전 차관은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지냈다. 2018년 11월 개각으로 차관은 환경부 내부 출신으로 바뀌었지만 장관은 다시 환경운동가 출신이 맡았다. 조명래 장관은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를 거친 대표적 환경운동가다.

청와대에서 환경 관련 정책을 관할하는 기후환경비서관은 녹색연합 출신이 번갈아 맡고 있다. 김혜애 전 녹색연합 공동대표의 바통을 김제남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이어받았다. 환경부의 움직임을 견제해야 할 국회에도 환경·시민운동권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운동연합 출신인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정됐다.

환경운동가 출신은 공식석상에서도 종종 색깔을 드러낸다. 올해 1월 논란이 됐던 조명래 장관의 강원 화천 산천어 축제에 대한 발언이 그런 예다. 그는 “(축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향연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가 강원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지난 정부에서 승인했던 강원 양양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취소하는 등 환경운동가 시절의 소신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양양군 관계자는 “관료 출신은 지역경제 파급력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환경부 요직에 환경단체 출신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미치는 강도가 높아졌다”며 “케이블카 사업을 적폐로 몰면 80%가 산지인 양양군이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文정부 들어 영향력도 커져

환경부 산하단체 주요 보직 역시 환경운동가가 줄줄이 차지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는 환경운동연합 출신인 서주원 사장과 환경정의 사무처장을 지낸 박용신 사업이사가 임명됐다. 환경보전협회 상근부회장은 남광우 전 성남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이 맡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환경부 자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환경부 내 환경운동 출신 인사들의 입지도 강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맡고 있던 물 관리 업무와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던 탄소배출권 사업 등이 이번 정부 들어 환경부로 이관됐다. 국토부 등의 관련 인력을 흡수하며 2016년 1889명이던 환경부 공무원 정원은 2019년 2362명으로 25% 늘었다. 수자원공사 등 관련 산하기관도 환경부 밑으로 들어왔다. 지난 2월 임명된 박재현 수자원공사 사장은 4대강 반대 운동을 주도한 학자 출신이다.

환경운동가들에게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영향력까지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한층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소비자와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을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환경부 공무원들을 만나다보면 ‘기업들은 환경을 해치는 악’이라는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한 대형 프랜차이즈업체 관계자도 “다른 부처와 비교해 환경부는 유독 업계 의견수렴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제도와 관련해 의견수렴을 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시행일을 코앞에 두고 형식적인 간담회를 잡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환경부 간섭이 대폭 늘어나면서 미래 먹거리인 연구개발(R&D)까지 애로를 겪기도 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중요 R&D 과제가 환경부가 정한 규정에 따라 막히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환경을 지킨다는 대전제 아래 양보나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노경목/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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