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두 교황'으로 본 정부실패의 그림자

1940~50년대 '페론주의'
기간산업 국유화·친노동정책 등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경제 악화
군부 독재의 '더러운 전쟁' 불러
이민자 몰리던 富國은 왜 '상습 부도국가' 됐나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는 엄마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출신 마르코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갔던 부자 나라는 아르헨티나였다. 지금은 쉽게 이해가 안 가는 설정이지만 20세기 초반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 독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수백만 명의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왔다. 마르코의 엄마도 그중 하나였던 셈이다.

영화 ‘두 교황’ 속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훗날 교황 프란치스코, 조너선 프라이스 분)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직장생활을 하던 1950년대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정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1970년대 군부 독재가 시작되고, ‘더러운 전쟁’이 자행되는 등 상황은 급반전된다. 부국의 상징이던 아르헨티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악의 스캔들 ‘바키리크스’

지난해 넷플릭스에 공개된 ‘두 교황’은 여러 측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음악 취향에서부터 성서에 대한 해석까지 모든 게 다른 두 성직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토론과 타협은 사라진 채 극단으로 흐르는 우리 현실에서 깊은 울림을 줬다.

이민자 몰리던 富國은 왜 '상습 부도국가' 됐나

영화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교황이 서거하면 전 세계 추기경들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를 연다. 외부와 단절된 채 새로운 교황을 뽑는 의식이다. 참석한 전원이 후보이자 투표자다. 외부에서는 굴뚝 연기의 색으로 투표 결과를 알 수 있다. 당시 선거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등 개혁파와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앤서니 홉킨스 분) 등 보수파의 대결로 관심이 컸다. 두 번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과반을 득표한 추기경이 없다는 뜻이었다.

세 번째 연기는 흰색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은 주자는 보수적 원칙주의자로 꼽히는 베네딕토 16세였다. 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보수파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인기 없는 교황이었다. 동성애, 여성사제, 이혼 등 개혁 과제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교황의 비서이던 파울로 가브리엘이 교황청 기밀문서를 빼돌린 ‘바키리크스’가 터지면서 교황은 위기에 처한다. 기밀문서에는 고위 성직자들이 외부 업체와의 계약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이 과정에서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을 해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명 인사에게 교황을 만나게 해주면서 돈을 받았다는 것도 있었다.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비난의 화살은 교황에게까지 쏠렸다.

하느님의 뜻과 멀어진 교회

이 같은 비리는 ‘주인-대리인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학에서 주인-대리인 문제는 대리인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자, 국민보다 자신이 속한 공무원 조직 등을 위해 일하는 관료 같은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바티칸의 성직자들이 신도들,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뜻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겠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할 본분을 잊고 돈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불러 교회 개혁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사사건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것을 확인하면서도 베네딕토 16세는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고 당신(베르고글리오)은 변화일 수 있다”며 자신을 이을 교황이 돼달라고 제안한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거절한다.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는 1970년대 더러운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예수회 신부들을 지키기 위해 군부와 타협했었다”고 고백한다.

더러운 전쟁을 가져온 정부실패

더러운 전쟁은 아르헨티나에서 1970년대 집권한 군부 세력이 자행한 학살을 말한다. 당시 3만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러운 전쟁의 시작에는 1940~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휩쓴 ‘페론주의’가 있다.

페론주의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통령이던 후안 페론은 국가 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민간부문의 역할을 줄였다. 철도·항만 등을 국유화했고 산업은행을 설치했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며 교역을 통제했다. 동시에 노동자의 임금을 크게 올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47년에서 1952년 사이 25% 늘어났다. 이와 함께 단위 생산 노동비용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발전이 더뎠던 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민자 몰리던 富國은 왜 '상습 부도국가' 됐나

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심각한 비효율을 낳았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핑계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직접 플레이어로 뛰면서 더 큰 비효율을 발생시켰고, 이는 ‘정부실패’로 이어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페론 정부의 왜곡된 임금 정책이 경제 발전에 부담을 주면서 비교우위 산업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며 “국제경쟁 실패, 지속적 무역수지 적자, 급속한 외채 증가라는 거시경제 운영 전반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급속히 무너졌고 정치가 경제의 뒷다리를 잡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독재와 페로니즘이 번갈아가며 집권했다. 필요한 개혁은 완수되지 못했고 위기 때마다 디폴트(국가부도)를 선언하는 등 후진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필요한 변화는 놓치지 말아야

베네딕토 16세는 “돌아보면 뚜렷하지만 그때는 헤맬 수밖에 없었다”며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죄를 사해준다. 베르고글리오가 더러운 전쟁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한 점 역시 명백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사제는 죄를 고백한 신자의 죄를 하느님을 대신해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 해 뒤인 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종신직인 교황이 물러난 것은 1294년 교황 켈레스티누스 5세 이후 두 번째였다. 다시 열린 콘클라베에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교황이 됐다.

비틀스를 좋아하는 프란치스코와 차라 레안더의 음악을 연주하는 베네딕토 16세. 뭐 하나 맞는 게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본인의 잘못도 인정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영화는 생각을 바꾸는 건 타협일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변화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영화 속 프란치스코의 말처럼 “진짜 위험은 우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경제정책을 반복하며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어쩌면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르겠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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