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왼쪽)과 구현모 KT 사장이 16일 서울 KT광화문빌딩에서 전략적 투자협약식을 체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왼쪽)과 구현모 KT 사장이 16일 서울 KT광화문빌딩에서 전략적 투자협약식을 체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38)이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로봇 사업을 키우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그동안 산업용 로봇을 제작해온 현대중공업은 이를 위해 KT와 손잡고 호텔, 레스토랑, 가정에서 사용될 서비스 로봇을 개발하기로 했다. 정 부사장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의 전략적 제휴를 주도한 데 이어 로봇 사업을 강화하며 경영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T, 현대로보틱스에 500억원 투자

현대중공업그룹과 KT는 16일 서울 KT광화문빌딩에서 정 부사장과 구현모 KT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KT는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인 로봇종합기업 현대로보틱스에 5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한다. 2022년 상장 예정인 현대로보틱스의 기업가치를 5000억원으로 평가한 셈이다.

정기선·구현모 의기투합…'가가호호 로봇시대' 연다
현대로보틱스는 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현대중공업은 1984년 로봇 사업에 처음 뛰어들었다. 1995년 6축 다관절로봇을 개발했고 2007년 LCD(액정표시장치) 운반용 로봇 등을 선보였다. 이후 2017년 현대중공업지주의 로봇사업부가 출범한 데 이어 올해 5월엔 별도 법인으로 분리됐다.

이날 계약 체결로 현대중공업은 산업용 B2B(기업 간 거래) 로봇을 넘어 가정용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로봇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두 회사는 정 부사장과 구 사장을 대표로 하는 6인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협력을 강화하고 지능형 서비스 로봇, 자율주행 기술, 스마트팩토리 등의 분야에서 신사업 기회를 찾기로 했다. 현대로보틱스가 하드웨어 개발 및 제작을 맡고, KT는 로봇과 자율주행 시스템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계획이다. 구 사장은 “KT의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역량을 바탕으로 제조산업의 혁신을 이끌 것”이라며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혁신을 확산시키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과 KT는 이미 시범용 서비스 로봇 ‘유니(UNI)’를 개발해 지난 1월부터 서울 동대문 노보텔호텔에서 활용하고 있다. 오는 9월까지는 유니를 기반으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나르는 식음료(F&B) 서빙 로봇, 청소와 보안 기능을 담은 청소·패트롤 로봇도 내놓기로 했다. AI 음성인식 기능과 지능형 영상분석 기술도 적용된다.

그룹 미래 사업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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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의 로봇 사업은 정 부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로봇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산업용 로봇에 이어 서비스로봇 시장에 진출해 세계적인 로봇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이 2018년 글로벌 로봇 기업인 독일 쿠가그룹과 협력 관계를 맺을 때도 전면에 나섰다.

정 부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제조업체의 경쟁력은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흐름을 읽고 변화하는 데서 결정된다”며 “KT와 협력해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 세계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세계 서비스로봇 시장 규모는 작년 310억달러(약 37조원)에서 2024년 1220억달러(약 146조원)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정 부사장은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아람코와의 제휴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11월 아람코와 조선·엔진·플랜트 분야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을 때부터 사업을 주도해 합작 조선소 설립도 이끌어냈다.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은 당시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함은 정주영 일가의 DNA”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이 그룹의 ‘현재’인 조선산업을 이끌고 있다면 정 부사장은 그룹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0%를 갖고 있다.

최만수/홍윤정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