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유통업체들이 '눈물의 세일'을 시작했다. 할인율이 50~80%에 달한다. 세일 시기도 확 앞당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봄·여름 신상품의 대부분이 재고로 남자 이를 싸게라도 빨리 판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년보다 '시즌오프' 시기를 2~3개월 앞당긴 데는 "이렇게라도 매출을 끌어올려야 하반기에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패션업계에선 "이런 추세라면 내년엔 사업을 접는 브랜드가 수십 개 나올 것"이란 괴담도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하루라도, 한 장이라도 빨리"

패션업계에서 재고는 가장 큰 부담 요인이다. 옷은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안 팔리면 제품의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또 옷걸이에 걸어야 하는 옷들은 물류창고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재고 관리에 보관비 등 고정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재고 털자"…'눈물의 세일' 나선 패션·유통 업체들
이 때문에 패션 브랜드들은 올 봄·여름 신상품을 하루라도 빨리 판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래 브랜드의 가치는 세일의 유무, 할인율의 폭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패션업체 한섬이 '타임' '시스템' 등 자사 여성복 브랜드를 항상 정가에만 판매하는 '노세일 전략'을 고수하는 것도 '최고급 국내 여성복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브랜드 옷을 언제 사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소비자가 가져야만 믿고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브랜드 가치를 따질 때가 아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당장 올 하반기 신제품을 생산할 돈이 없다"는 곳도 있다. 또 패션업체들은 제품 단가가 비싼 가을·겨울 신제품을 많이 팔아야 그나마 연매출 수치를 높일 수 있다. 그러려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인데 그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봄·여름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브랜드들이 많다.
"재고 털자"…'눈물의 세일' 나선 패션·유통 업체들
"재고 털자"…'눈물의 세일' 나선 패션·유통 업체들
특히 토종 브랜드들의 세일 폭이 크다. 에잇세컨즈, 미쏘, 빈폴, 헤지스, 써스데이아일랜드, 탑텐 등이 대표적이다. 에잇세컨즈는 11일부터 '시즌오프' 세일을 시작했는데 최대 67%까지 신제품을 할인해준다. 미쏘도 이날부터 세일을 시작했다. 원래 중저가 브랜드였지만 최대 67%를 할인해 팔고 있다.

해외 브랜드인 올세인츠, 마시모두띠, 앤아더스토리즈, H&M, 유니클로 등도 예년보다 일찍 '시즌오프' 세일을 시작했다. 정가에서 30~50%씩 싸게 판다. 거의 절반 값에 올 봄·여름 신제품을 파는 셈이다. 보통 여름 끝물인 8월 말이나 9월쯤 돼야 여름 신상품을 싸게 파는 게 관행이었는데 그 시기를 확 앞당겼다.
"재고 털자"…'눈물의 세일' 나선 패션·유통 업체들
"재고 털자"…'눈물의 세일' 나선 패션·유통 업체들
○오픈마켓도 '빅세일' 돌입

유통업체들도 가세했다. 패션에 특화한 온라인몰들이 할인폭을 크게 높여잡았다. W컨셉과 위즈위드는 지난 8일부터 '빅세일'을 시작했다. W컨셉은 입점 브랜드에 따라 최대 80%까지 할인해준다. 위즈위드는 골든구스, 커먼프로젝트 등의 브랜드를 최대 50%까지 싼 값에 팔고 있다.

오픈마켓도 '상반기 패션 결산 세일'에 들어갔다.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과 옥션은 오는 17일까지 170여개 패션·뷰티 브랜드 제품을 최대 80% 할인가에 판매한다. 여름 신제품이 대부분이다. 휠라, 아디다스, 헤지스, 닥스, 바네사브루노, 갤럭시, 엠비오, 지오다노, 안다르, 로즈몽 등 유명 의류 브랜드 제품을 싸게 판다. 록시땅,버츠비, 토니모리, 히말라야 등 화장품도 여럿 참여했다. 오픈마켓들은 회원제 등급에 따라 25~30%까지 중복할인을 받을 수 있는 쿠폰까지 뿌리고 있다. '재고 털이'로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이다.

한 패션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브랜드 가치나 할인율 폭을 고민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며 "재고를 한 장이라도 빨리 털어내고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라고 털어놨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