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소음과 욕설만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보암모는 ‘엄마 아빠가 삼성에 다니는 아이들은 당해도 싸다’고 답하며 전혀 개선의 의지가 없습니다.”

자녀를 삼성어린이집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호소문의 한 대목이다. 이 문서는 삼성이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을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문기일(10일)을 앞두고 재판부에 전달됐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어린이집 등은 지난달 20일 보암모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냈다.

보암모 회원들은 삼성생명이 요양병원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며 2018년부터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이 단체는 장송곡을 틀거나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삼성을 압박했다.

이런 소음은 3층에 입주한 어린이집에도 고스란히 들려왔다. 학부모들은 탄원서에서 “영유아들이 소음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정서 발달과 보육에 막대한 피해를 받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사옥 앞 도로에 멈춰선 트레일러와 컨테이너가 아이들 등·하원길을 위협하는 데다 집회에 동원된 상여, 꽃가마, 현수막 등으로 실외 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위대가 튼 노래에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발놈아’ 같은 가사가 들어 있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교실 내부에서 측정한 소음이 평균 80dB(데시벨)을 넘는다”며 “영유아들이 욕설이 포함된 노래에 노출돼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무심코 따라 하는 경우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생명은 보험금 지급 규정상 보암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은 1990년대부터 암의 직접 치료만 보장하고 있는데, 보암모 회원들이 청구한 요양병원 입원치료비는 직접 치료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회사 측은 “원칙을 벗어나 보험금을 주면 배임 소지가 있다”고 했다.

반면 보암모 측은 “과거 보험증권에 ‘암의 치료’라고 기재됐던 문구를 삼성생명이 ‘암의 직접 치료’로 변경해 위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작 필요할 때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대형 보험사의 갑질'이라는 것이다.

사옥에 입주한 삼성 직원들은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하소연한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어린이집 등은 지난달 20일 보암모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에 호소문을 보낸 이들은 어린이집 학부모만이 아니다. 삼성사옥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집회를 중지시켜 달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창문조차 제대로 열기 힘들다”며 “소음 때문에 이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