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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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항공업계가 직격탄를 맞은 가운데 최근 자주 회자되는 항공사가 있다. 바로 일본의 국적 항공사 'JAL(일본항공)'이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비효율적 사업 등으로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1년 2개월만에 회생에 성공하면서 현재는 일본의 대표 항공사로 자리매김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국내 항공사들에게 JAL의 눈부신 부활은 '모범 답안'처럼 여겨진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장고에 들어가자 JAL 회생 사례를 집중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3자연합'도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을 JAL처럼 되살리겠다"며 여론에 호소하기도 했다. JAL이 국내 항공업계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고 있는지 알아봤다.

◆항공 비전문가가 되살린 JAL

'하늘의 일본' JAL은 1951년 설립 후 30년 넘게 '반관반민(半官半民)' 체제를 이어왔다. 1987년 민영화된 이후에도 JAL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직 관료 등 낙하산 인사들은 연금 챙기기에 급급했고, 자민당 의원들은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수익성이 낮은 지방공항 노선 취항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02년 JAS(일본항공시스템)를 인수하면서 오히려 중복노선만 늘어나 사업 비효율성이 커지기도 했다.

이때 JAL의 부활을 이끈 건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이나모리 회장은 '효율성'을 앞세워 JAL 운영 전략을 재정비했다. 회사 내에 영업·재무·기획 등 10명 이하의 작은 조직을 여러 개 만들었다. 한 소집단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의사결정권을 부여했다. 이른바 '아메바 경영'이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방식을 차용해 대한항공을 되살리겠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지난 2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JAL 사례를 언급하며 "회사를 성장시키는 힘은 조직 문화 혁신과 밑으로부터의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한진그룹이 3자연합이 추천한 이사진 후보가 항공 비전문가라는 점을 들어 비판하자 JAL 사례를 방패로 삼기도 했다. 강 대표는 "5000억원씩 적자를 내던 JAL을 2조원 흑자로 만든 장본인은 항공 비전문가인 이나모리 회장과 공대 출신 전문가들"이라며 "비전문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오히려 회사를 좋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JAL은 한진그룹이 3자연합 측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한진그룹은 "3자연합은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JAL의 사례를 신봉하는 만큼 말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JAL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4만8000명의 인력을 3만2000명으로 감축하고, 자회사를 절반가량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인건비와 퇴직연금도 각각 20%, 30%씩 줄였다.

◆해외 파트너와의 신뢰 유지가 관건

JAL의 부활에는 이나모리 회장 개인의 노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JAL의 6조원 금융채무를 탕감해주고 운영자금을 지원해주는 등 13조원에 달하는 금융 지원에 나섰다. 특히 시장에서는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일본 정부는 JAL에 항공기를 빌려준 해외 리스사, JAL에 연료를 공급하는 정유사 등에 "JAL를 정상화할 테니 계약을 연장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신용을 보증한 덕분에 JAL은 네트워크를 잘 유지할 수 있었고, 법정관리 1년 만에 '졸업'을 맞았다.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이같은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아시아나항공이 정상화될 것이란 시그널을 줌으로써 신용을 보강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결국 연계 산업과의 네트워크가 사활을 가른다"며 "금융 지원도 필요하지만 외국 정부 및 사업 파트너과의 관계를 이어나기 위한 정부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