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소재 다변화 등으로 대응…당장 영향은 제한적일 듯"
일각 미·중 무역갈등 속, 한일 관계 악화로 '불똥' 튈까 우려

정부가 2일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작년부터 꾸준히 다변화를 이어왔기 때문에 당장 소재 조달에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미·중 무역갈등 속 '샌드위치' 신세가 된 국내 기업 입장에선 한일 관계까지 악화될 경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 WTO 제소…반도체·디스플레이 불확실성 커져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수출 규제를 강화한 품목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가지다.

그중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투입되는 소재여서 수출규제 초반 업계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이 작년 12월 EUV용 포토레지스트에 대해서는 수출심사와 승인 방식을 개별허가에서 덜 엄격한 '특정포괄허가'로 변경했다.

종전의 포괄허가로 완벽하게 회귀한 것은 아니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문제없이 수출 승인을 받아 일본산 포토레지스트를 들여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 JSR과 벨기에 연구센터 IMEC가 합작해 설립한 포토레지스트 업체로부터도 제품을 들여오는 등 다변화 루트도 열어 놨다.

반도체 업계는 또한 기체 불화수소는 미국 화학사 등 해외 업체로, 액체 불화수소는 국내 기업을 위주로 조달처를 다변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불산액 일부를 국산으로 대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불산액 업체 솔브레인은 기존보다 2배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고, SK머티리얼즈도 2분기 내 고순도 불화수소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 업계도 일본산 불산액 100%를 국내 기업 제품으로 대체했다.

당초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폴더블 디스플레이 소재인 투명 PI 필름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으나, 삼성디스플레이는 애초 일본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 수출규제 WTO 제소…반도체·디스플레이 불확실성 커져

이 때문에 우리 정부의 WTO 제소 자체만으로 당장 국내 기업들이 소재 조달과 제품 생산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문제는 일본측 반응이다.

이번 WTO 제소로 한일 관계가 악화할 경우 소재·부품 조달에 있어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생산 차질이 없다고 해도 현재 수출규제 품목을 기존처럼 '원활하게' 조달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WTO 제소에 반발해 우리측 수출 규제 대상 품목을 다른 쪽으로 확대하거나 허가 절차를 까다롭게 할 경우 우리 기업들의 고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미·중 무역갈등 속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 수출 규제가 다시 강화되거나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질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지지율 반등의 카드로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을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적 문제로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외교적·정치적 갈등이 국가 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자국 수출 기업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한국무역협회 문병기 연구원은 WTO 제소에 대해 "결국 미국이 결론을 낼 텐데 우리 기업의 반도체 생산 차질이 미국 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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