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도 단톡방은 괴로워

"우리도 단톡방 스트레스…탈출하고 싶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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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 월요일 아침에 사장님께 급히 보고할 게 생겼어요. 내용 좀 미리 보내주세요.”

토요일 오후, 국내 한 제조업체의 본부장급 임원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에 뜬 상사의 메시지. 마음 같아선 못 본 척하고 싶지만 김 부장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떠안은 업무를 팀원들이 모인 단톡방에 지시하자니 머뭇거려진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2030세대 젊은 팀원들에게 업무 외 시간에 일을 시켰다간 뒷말이 나올 게 뻔하다. 혹시라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거나 블라인드 앱에 회사명을 공개해 글을 올리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 부장은 일요일 약속을 취소하고 사무실에 나가 보고서를 썼다.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알람이 울리는 단톡방은 감상무이부장들에게도 스트레스다. 젊은 직원들은 업무 관련 단톡방이 너무 많은 상황을 ‘카톡 지옥’ ‘카톡 감옥’ 등으로 표현한다. 김상무이부장들도 ‘카톡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부원들과의 단톡방에선 젊은 직원들 눈치 보랴, 상사와의 단톡방에서는 즉각 답하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면 보고가 보편적이었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대놓고 말도 못하는 김상무이부장들의 속앓이를 들어봤다.

영혼 없는 대답이라도 해주면 다행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김 부장은 팀원들이 모인 단톡방에 공지를 올리거나 업무 지시를 할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아무도 답변해주지 않아서다. 일부 직원이 “넵” “넵넵” 등이나 이모티콘으로라도 호응해주면 다행이다. 대답이 없으니 업무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카톡으로 많은 업무 대화가 이뤄져 더 신경이 쓰인다. 김 부장은 “요즘은 누군가를 특정해 얘기하지 않으면 대답을 요구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메시지 옆에 있는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 읽었는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 부장은 지난 설을 앞두고 부서 단톡방에 명절 덕담 메시지를 남겼다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신입사원을 제외하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최 부장은 “아무리 요즘 직장인들이 카톡 공해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명절에 인사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카톡 왕따’…남 얘기 아니야

대기업 영업부서에서 근무 중인 박 부장은 최근 자신을 제외한 부서 단톡방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날 밤엔 잠을 설쳤다. 초임 부장으로서 젊은 팀원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했다고 자평해온 만큼 충격은 더 컸다. 박 부장은 “‘카톡 왕따’란 말을 듣긴 했지만 막상 직접 겪으니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더라”며 “그 이후로 단톡방에서 ‘넵’ 등의 답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쿨한 척 얘기했는데 속으로는 서러운 감정이 밀려왔다”고 했다.

대기업 홍보부에서 일하는 이 상무는 단톡방에서 ‘묵언수행’을 한다. 업무상 대화할 일이 있으면 직접 부르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소통 방식을 바꿨다. 단톡방에서 자신이 말을 할 때만 팀원들의 태도가 갑자기 딱딱해진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메시지를 보내면 “넵” “알겠습니다” 등 사무적으로 답하다가 팀원 간 대화할 때는 ‘해요체’를 쓰며 친근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단톡방에 있으면서도 느끼는 소외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팀원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상사 카톡에는 실시간 답변 ‘이중고’

김상무이부장들은 정작 자신들은 상사나 은퇴한 선배들의 단톡방에서 실시간으로 답변해야 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젊은 직원들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윗사람과의 단톡방에선 지시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서 부장은 “젊은 직원들이 업무 관련 단톡방이 많다고 투덜거리는데 며칠만이라도 입장을 바꿔서 일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부서 단톡방 외에도 담당 본부장 휘하 부장들이 속한 단톡방, 대표이사 직속 태스크포스(TF) 단톡방, TF 회의 준비를 하기 위한 실무자 단톡방 등 10곳이 넘는 단톡방에 속해 있다. 서 부장은 “각 단톡방에서 쏟아지는 메시지에 답변하다 하루를 다 보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상사를 비롯해 은퇴한 선배들이 보내는 각종 메시지에 간단하게라도 답을 남겨야 하는 것 역시 고역이다. 오늘의 유머에서부터 일간 뉴스 정리, 세계 명사들의 명언, 꽃과 풍경 등을 합성한 사진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김 상무는 “아무 얘기도 없이 명언이 담긴 합성 사진만 받는 일이 잦다”며 “예의상 무시하기는 어려운데 늘 똑같은 답변을 할 수도 없어 고민될 때가 많다”고 했다.

‘현타’ ‘카페’ 등 줄임말 몰라 ‘곤혹’

젊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줄임말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는 일도 다반사다. 일일이 뜻을 물어보자니 너무 ‘꼰대’ 같고 모르는 척 넘어가자니 대화에 참여할 수 없어 난감하다. 젊은 세대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송 상무는 “한 팀원이 단톡방에서 ‘현타(현실 자각 타임) 왔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 고민했다”며 “요즘은 모르는 단어가 올라오면 포털 사이트에서 곧바로 검색해본다”고 했다.

카톡 내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난감했던 적도 많다. 이모티콘 및 기프티콘 선물하기, 카카오페이 등 기능이 추가됐지만 이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최근 “팀원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카페’로 2만원씩 송금해달라”는 단톡방의 공지를 보고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카페는 카카오페이의 줄임말로, 계좌번호 없이 카톡 계정으로 돈을 보낼 수 있는 수단이다. 김 상무는 “카페가 무엇인지 물어보기가 민망해 팀원에게 현금으로 건네고 그날 귀가 후 아들에게 물어서 배웠다”며 “새로운 기능에 익숙한 젊은 직원들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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