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회원 등 삼성그룹을 겨냥한 시위대들이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한경DB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회원 등 삼성그룹을 겨냥한 시위대들이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한경DB
삼성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10년째 시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 경기 과천3구역 재건축아파트 상가 임차인들이다. 확성기를 동원해 노동가를 틀고 회사를 겨냥한 비방 구호를 외친다. 재건축 과정에서 입은 손실을 삼성물산이 보상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회사 측 설명은 다르다. 2005년 이뤄진 재건축사업에서 삼성물산의 역할은 시공사였다. 재건축 과정에서 상가 임차인 보상 문제는 임대인과 해결하는 게 원칙으로 시공사는 보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수막과 천막, 대형 확성기…. 번화가에 자리잡은 주요 대기업 본사를 지날 때마다 볼 수 있는 시위 물품들이다.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면서 ‘본사 앞 시위’가 일상이 됐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한 달간 서울에 신고된 집회는 1214건이었다. 이 중 대기업 본사 앞에서 열린 시위만 351건으로 30%에 육박했다. 그나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전보다 시위 건수가 30%가량 줄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다.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이거나 이해당사자가 아닌 경우에도 “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쉽지 않다. 경찰은 폭력, 방화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떼법’에 멍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세계를 상대로 이뤄지고 있는 적폐청산국민운동의 ‘배드민턴 시위’도 무리한 시위의 대표 사례다. 이마트 서울 월계점 부지에 공짜로 배드민턴장을 지어달라는 게 요구의 핵심이다. 과거 이 부지에 배드민턴장이 있었으니 부지를 매입한 이마트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마트로선 요구를 들어줄 방법이 없다. 과거에도 이 배드민턴장은 무허가 건축물이었다.

서울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에선 ‘현수막 전쟁’이 한창이다. 회사 직원이던 김모씨가 현수막과 1인 시위 등의 방법으로 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회사 측은 “노조활동과 무관하게 60일간 장기 무단결근했기 때문에 해고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2010년 “부당해고가 아니다”고 최종 판결했다.

기업을 정조준한 시위는 대부분 과격하다. 스피커와 확성기를 동원해 오너 경영자를 겨냥한 욕설을 내뱉는다. 상여, 감옥 모형 등 자극적인 물품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행인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상황을 연출해야 이미지 타격을 우려한 기업이 타협을 시도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도를 넘은 시위는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며 “오너 경영자 집 앞 등 주거지역 시위와 장기 천막 시위 등은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여 끌고 장송곡 틀고…욕설·비방에 포위당한 '삼성 타운'
대기업인 죄…365일 '떼법 시위'에 웁니다
다섯 살 지원(가명)이는 지난해 12월 삼성생명 사내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교실 앞에 자리잡은 시위대의 고함과 매일 들려오는 장송곡이 무섭다고 했다. 지원이 부모는 등하원의 불편을 감수하고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 측은 “시위대가 큰 소리를 낼 때마다 깜짝 놀라며 움츠러드는 원아가 많다”며 “말을 못하는 아이들이 울면서 엄마를 찾기도 한다”고 했다.

삼성을 겨냥한 집회와 시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퇴직자 복직, 보험비 추가 지급,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이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삼성 임직원은 물론 인근 주민들도 피해를 호소한다. 올 들어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주변에선 하루평균 4~5곳의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법원 판결에도 계속되는 시위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서초타워 앞에 관과 상여 등을 가져왔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서초타워 앞에 관과 상여 등을 가져왔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지난 29일 서초동 삼성생명 사옥 3층 사내 어린이집. 창문 밖을 바라보자 관들이 눈에 띄었다.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이 상여를 끌고 장송곡을 부르며 건물 주변을 도는 퍼포먼스를 하려고 가져다 놓은 물품이었다. 관 옆에서는 보암모 회원들이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가 틀어놓은 노랫소리는 건물 안에서도 들렸다.

이들은 삼성생명이 요양병원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며 2018년부터 시위를 벌여왔다. 삼성생명은 요양병원 입원치료비는 직접 치료라고 볼 수 없어 보험금에서 제외했다. 보암모 측은 과거 보험증권에 ‘암의 치료’라고 기재됐던 문구를 삼성생명이 ‘암의 직접 치료’로 변경해 위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생명 측은 1990년대부터 암의 직접 치료만 보장해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5일 이정자 보암모 공동대표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암 입원료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의 요양병원 치료는 암 치료와 직접 연관성이 없어 입원비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보암모는 패소 이후에도 상고하겠다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욕설 섞인 노래 따라하는 아이들

보암모 등 단체는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주로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집회·시위를 벌인다. 서초사옥 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사내 어린이집 원아들이 등원하거나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대와 겹친다. 아이와 부모들이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유다. 삼성생명 사내 어린이집의 이 모 원장은 “시위대가 욕설 섞인 노래를 부르고, 욕설로 고함치는 것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듣게 된다”며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발놈아’라는 시위대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아이도 적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원장은 “아이들이 듣고 있으니 욕설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찾아가봤지만 시위대 관계자는 ‘어린이집 원장이 나를 괴롭힌다’고 악을 쓰며 도로 위에 드러누웠다”고 전했다.

인근 주민과 상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인근 상가 관계자는 “매일 근처에서 곡소리를 내면 되는 장사도 안된다”며 “경찰에 민원을 넣어봤지만 ‘시위 내용까지 단속할 수는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 계열사와 삼성어린이집 등은 결국 지난 20일 보암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초 심문기일은 27일이었다. 그러나 보암모 측이 심문기일 변경을 재판부에 신청해 6월 10일로 연기됐다.

10년 이어진 과천 재건축 임차인 시위

서초동 삼성사옥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과천3구역 재건축 아파트 상가 임차인 세 명이다. 조합 측과 합의하지 못한 두 점포의 임차인인 이들은 2009년 12월 시위를 시작했다. 이주와 철거에 따른 손실을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보상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숫자는 적지만 이들의 시위 강도는 보암모 못지않다. 확성기를 동원해 법적 허용치(주간 기준 65dB)를 넘어서는 노동가를 틀고, 회사를 겨냥한 비방 구호를 외친다. 시위 횟수도 주 4회에 달한다. 삼성물산이 2016년 서초동에서 판교로 이전했는데도 이들의 시위는 서초동에서 계속되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재건축에 따른 보상은 시공사가 나설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한다. 임의로 보상하면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채무부존재 확인 및 업무방해금지, 명예훼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총 다섯 건의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해 모두 승소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끝난 문제라는 의미다.

기업들을 압박하는 집회와 시위는 더 격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은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용희 씨가 삼성 측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고 29일 시위를 멈춘 데 주목하고 있다. 기업을 끈질기게 압박하면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결국 합의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김씨는 삼성 무노조경영의 피해자로 알려졌지만 주장의 진실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송형석/윤아영/최다은/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