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융합산업 선점하자"
삼성, 이종기업 간 협업 주도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업종이 다른 국내 기업들의 합종연횡 사례가 늘면서 중심축 역할을 하는 기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협업 파트너를 정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은 삼성그룹 계열사와 네이버, 카카오 등이다. 최첨단 미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지난 13일 충남 천안에 있는 삼성SDI 사업장을 찾았다. 현대차그룹 최고경영진이 삼성 계열사를 방문한 첫 사례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차세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최근 1회 충전으로 800㎞를 달릴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 성과를 내놨다.

현대차와 삼성SDI만이 아니다. 이마트는 삼성전자와 식품 쇼핑 분야에서 협력 중이다. 사물인터넷(IoT) 냉장고인 패밀리허브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 이마트몰에서 식품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청호나이스는 렌털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협업하고 있다. NHN은 삼성SDS와 클라우드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손을 잡았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결합한 융합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이종(異種) 기업 간 협업 사례도 급속히 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SK텔레콤은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활용한 자율운항 선박 연구에 나섰고, LG전자는 네이버와 로봇 연구개발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GS칼텍스와 수소차 대중화를 위해 손잡았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기업 간 합종연횡이 두드러지는 점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김진국 배재대 무역물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과 협력망이 약화되고 있다”며 “해외 변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국내 파트너의 매력이 한층 더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부터 뭉쳐야 산다"…'복합동맹' 맺는 삼성·현대차·SK·LG
한국 대표기업끼리 '의기투합'…글로벌 패권 도전


지난해 9월 배터리업계에 비보가 전해졌다. 독일 폭스바겐이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스웨덴 신생업체인 노스볼트와 합작사를 설립할 것이란 소식이었다. 폭스바겐과의 협업을 기대한 국내 업체 관계자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약 4개월 뒤 현대자동차와 LG화학은 합작법인 설립 등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산업계에선 “유럽 전기차 업체들이 외국 기업에 울타리를 치자 한국 기업끼리 힘을 합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래 먹거리 같이 찾자” 의기투합

29일 산업계에 따르면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한국 대기업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과거는 묻어두고 한국 ‘대표 기업’끼리 뭉쳐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확산되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와 지역 블록화 등의 영향으로 한국 기업 간 협업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배터리,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첨단 미래 산업과 관련해 한국 기업 간 협업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15일 삼성SDI 천안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만난 게 대표 사례로 꼽힌다.

삼성SDI+현대차, 삼성전자+이마트…삼성發 '신협력시대'

현대차는 다른 한국 배터리 업체들과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SK이노베이션을 1차 공급사로 선정했고 2022년 출시되는 차종에도 LG화학 배터리를 쓰기로 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올해 746만 대에서 2025년 2144만 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안정적인 전기차 배터리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5G와 관련한 기업들의 협업도 활발하다. 삼성중공업이 SK텔레콤과 함께 개발 중인 자율주행 선박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5G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 선박에 대한 원격 관제 테스트에 성공했다. LS엠트론도 LG유플러스와 원격 제어 트랙터를 개발 중이다.

AI 및 빅데이터 기술 개발을 위해 손잡는 경우도 적지 않다. HMM(옛 현대상선)은 카카오의 정보기술(IT) 서비스 전문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함께 디지털 혁신을 통한 기업 체질 개선에 나선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해운업에 디지털을 접목하기 위한 AI·빅데이터 공동 연구 등을 함께할 예정이다.

경쟁사와도 ‘전략적 협업’

삼성SDS와 NHN이 클라우드 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하는 등 경쟁사끼리 손을 잡는 경우도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외국 기업의 국내 클라우드 시장 침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협업 사례다. 두 회사의 주력 클라우드 사업 분야는 달랐지만 금융 클라우드 등에선 경쟁 관계였다. 앞으로는 고객사 클라우드 구축 사업의 공동 참여를 확대하고 클라우드 기반 상품·기술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업무 환경 혁신을 위해 인터넷 기업을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달 핵심 보험 시스템에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환경을 구축하기로 하면서 작업을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NBP)에 맡겼다.

한국 대기업 간 협업이 새로운 흐름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 간판 기업의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이 세계 1·2위 수준까지 올라왔고, 국내 생산이 가능해 물류비 등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국 배재대 무역물류학과 교수는 “삼성 현대차 LG 등은 세계 1위 제품을 꾸준히 내놓을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협력사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 돌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지역 경제 블록화 현상도 한국 기업 간 협업을 가속화할 요인으로 꼽힌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코로나19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같은 지역에 있는 기업끼리의 협업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 간 신뢰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경영 리스크를 낮추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송형석/황정수/김주완/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