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악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악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13일 단독 면담을 하고 차세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재계 1, 2위 그룹을 이끄는 두 사람이 사업 목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신성장 산업으로 정한 미래차 분야에서 재계 ‘빅2’가 손을 잡은 것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을 포함한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이날 충남 천안 삼성SDI 사업장을 찾았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과 서보신 현대차 상품담당 사장 등이 동행했다. 삼성에서는 이 부회장 외에 전영현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이 이들을 맞았다. 현대차 경영진이 삼성 사업장을 찾은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 수석부회장 등은 삼성의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행 개발 현장도 둘러봤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차세대 제품이다. 기존 배터리보다 크기가 작고 안정성은 높아 전기차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최근 한 번 충전으로 800㎞를 달릴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 성과를 공개한 바 있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오전 10시께 만나 세 시간가량 면담했다. 전고체 배터리뿐 아니라 두 그룹 간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의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납품처로 삼성SDI를 추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판 뉴딜’ 사업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 등 신기술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게 이번 만남의 취지”라며 “구체적인 협업 방안은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현대차, 1회 충전에 800㎞ 달리는 배터리로 '전기車 승부수'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미래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손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삼성SDI 충남 천안사업장에서 전격 회동하면서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회동을 계기로 한국 1, 2위 그룹이 전기차 및 배터리산업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형 배터리 공동 개발 가능성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만남에서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부터가 배터리를 제조하는 삼성SDI 공장이다. 그만큼 두 사람이 전기차 배터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용-정의선 '미래車 동맹'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30년이 되면 세계에서 판매되는 차량 가운데 절반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2025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때까지 친환경자동차 라인업을 44종으로 늘리고, 이 중 절반 이상인 23종(현재 9종)을 순수 전기차로 출시할 계획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려 세계 2위의 전기차 제조사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다. 현재는 세계 4위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의 성능은 엔진이 좌우했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고성능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전기차 제조사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매년 35% 이상 커질 것이라는 내용의 전망도 있다. 삼성은 10년 전인 2010년 자동차 배터리를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만큼 시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두 그룹의 협업은 삼성과 현대차 양측 모두에 절실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은 현대·기아차라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현대·기아차는 삼성SDI 배터리를 쓰지 않았다. 현대차그룹도 추후 배터리 공급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구매처를 다양화해야 한다. 노무라증권은 내년부터는 배터리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칫 배터리가 없어 전기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업계는 이날 회동을 계기로 삼성SDI 배터리가 현대·기아차 전기차에 장착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래형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공동으로 개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삼성과 현대차는 당장 전략적 제휴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협업이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미래 먹거리 전방위 협력할까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회동이 단순히 배터리 분야 협업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국내 간판 기업의 총수가 사상 처음으로 개별적으로 만난 만큼 전방위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당장 ‘CASE(커넥티비티·자율주행·차량공유·전동화)’로 불리는 미래차 분야에서는 두 회사가 손을 맞잡으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반도체 및 센서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하는데, 삼성은 이 부문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두 회사가 협력의 폭을 넓히면 글로벌 미래차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를 생산하고 있고, 자율주행 차량용 센서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2016년에는 차량용 전장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두 그룹의 총수가 물꼬를 튼 만큼 협력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송형석/도병욱/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