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위기를 극복할 카드로 ‘규제 혁파’를 꺼내들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헬스케어 등 10대 산업 분야에서 65개 규제 혁신 과제를 올해와 내년에 해결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발표한 규제 대책 중에선 가장 범위가 넓고 체계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규제 혁신을 더 미뤘다가는 경제의 V자 반등은 고사하고 L자형 장기 불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65개 과제의 상당수는 이미 발표한 대책의 ‘재탕’인 데다 핵심 과제로 꼽히는 원격의료 허용은 빠져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국인 상대 공유숙박 서비스 허용

정부가 제시한 10대 규제 혁신 산업은 데이터·AI, 미래차·모빌리티, 의료신기술, 헬스케어, 핀테크(금융기술), 기술창업, 산업단지, 자원순환, 관광, 전자상거래·물류 등이다.
AI 의료기기 등 심사기간 단축…내국인 국내 공유숙박도 허용
핀테크 분야에선 소수 단위의 주식 매매 허용을 추진한다. 애플 아마존 삼성전자 주식 등을 0.1주, 0.5주 단위로 살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아마존의 주가는 2314달러로 1주의 원화 가격은 280만원을 웃돈다. 1주도 가격이 비싸 개인투자자가 매입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민의 주식 시장 접근성이 좋아지고 투자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오는 6월까지 구체적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체크카드와 카카오페이 등 모바일결제 등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허용할 방침이다. 구매 금액의 일정 비율을 돌려받는 캐시백도 가능해진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고,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업계의 숙원이던 내국인 공유숙박 규제도 풀릴 전망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은 일반 주택을 숙소로 제공하는 공유숙박은 외국인에게만 허용하고 있다. 세계 190개 국가에 보급된 에어비앤비를 국내에선 한국인은 이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정부는 안전·의무 사항 준수 등을 전제로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올해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혁신형 의료기기는 빨리 심사

65개 세부 추진 과제는 데이터·AI(9개)와 보건의료(의료신기술·헬스케어 10개) 분야가 가장 많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그 중요성이 더 커진 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선 혁신형 의료기기 우선심사제 도입이 눈에 띈다. 혁신형 의료기기는 AI,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IoT) 등 혁신 기술이 적용됐거나 사용방법 등의 개선을 통해 기존 의료기기보다 유효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을 말한다. AI를 활용한 자동엑스레이 판독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 관계자는 “우선심사제를 통해 혁신적인 의료기기의 시장 출시 기간이 지금보다 절반 정도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산업단지 규제도 완화한다. 정부는 구미·대구·창원 등의 국가산업단지 입주 업종 제한을 풀어 다양한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대구국가산단에선 이륜자동차 제조업, 창원국가산단에선 액화수소 제조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원격의료 허용은 또 미뤄져

원격의료 허용이 65개 규제 개선 과제에서 빠진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고 있다. 중국 일본 미국 등 주요국에서 원격의료가 일상화된 것과 대비된다. 코로나19 사태로 환자의 병원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지만, 이는 시범 사업의 일종이어서 근본적 규제 개선은 아니었다. 원격교육 역시 이번 제도 개선 과제에서 빠졌다. 다음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논의할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원격의료, 원격교육 등 비대면산업의 규제 혁파에 각별히 역점을 둬 나가겠다”고는 했지만,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 등을 걱정해 실행에 못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