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사진=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사진=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삼성전자 내에서 유일하게 상급노조(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4노조가 사측에 단체교섭 요구서를 제출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한노총이 삼성전자에 산하 노조를 만든지 5개월 만에 첫 실력행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한경닷컴> 취재결과 한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산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4노조)는 지난 24일 단체교섭 요구서를 사측에 제출했다. 사측에 제출된 단체교섭 요구서에 따르면 4노조는 △노조 활동 보장 △노조 사무실 조성 등을 요구했다.

앞서 전국노조를 표방하며 출범했던 3노조가 지난해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양대노총과 함께 교섭에 나서는 것은 4노조가 처음이다. 안양지역 사무직 직원들이 주축이 된 1노조와 삼성전자 구미지부 네트워크 사업부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2노조는 사측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다.

사측은 과거에도 회사 내부 소규모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했던 만큼 이번에도 절차대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재판에서 전현직 임원이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 80년간 지켜온 무노조 방침을 사실상 폐기한 뒤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을 약속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4노조로부터 단체교섭 요구 공문이 접수됐고 관련 내용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동안 다른 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임해왔던 것처럼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걱정의 시선도 적지 않다.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보다 단기적인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뒀던 양대 노총의 행태 탓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노총이라는 외부 세력의 영향력이 들어가면서 시작된 것이 삼성전자 4노조"라면서 "온건하고 합리적인 모델이 돼야지 자리를 잡자마자 강경투쟁에 나서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가 설립됐으니 이미 되돌릴 수는 없고 상급노조가 개입하는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 뒤 회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관건"이라며 "임금교섭보다는 비정규직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정부의 친노조 정책 기조 아래 양대노총의 힘이 점점 강해져 가는 국면"이라며 "한국노총을 등에 업고 있는 노조가 어떠한 실력행사를 할지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번 단체교섭 요구를 통해 삼성전자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상위노조를 끼고 있는 노조의 힘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노총의 이 같은 움직임이 삼성 내 다른 계열사로도 번질지 주목된다. 3개의 소규모 노조만 있던 삼성전자에 지난해 11월 첫 한노총 산하 노조가 생긴 뒤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에도 한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노조가 들어섰다. 삼성생명·삼성전자서비스·삼성SDI·삼성엔지니어링·삼성에스원에는 민노총 소속 단독 노조가 있고 삼성전자 3노조 역시 한노총의 이번 첫 실력행사를 계기로 민노총과의 연대를 추진 중이다.

노정동·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