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타다 금지법’처럼 기존 산업과 혁신 산업의 갈등 빈도가 더 잦아질 것”이라며 “앞으로는 정치도 기업도 더 작은 덩치로 작은 곳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타다 금지법’처럼 기존 산업과 혁신 산업의 갈등 빈도가 더 잦아질 것”이라며 “앞으로는 정치도 기업도 더 작은 덩치로 작은 곳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요즘 농산물 시장에서 ‘완판 신화’를 쓰는 남자가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64)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급식과 외식, 수출 등의 농수산물 유통로가 막힌 농가를 돕자며 지난달 팔을 걷어붙였다. 강원도는 지역 농수산물을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팔고, SNS로만 알렸다. 감자는 2주 만에 20만6000박스, 오징어는 30분 만에 2000상자, 아스파라거스는 1분 만에 2000상자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비슷한 시기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벌였지만 대부분 지역 내 직거래 등 소량 판매에 그쳤다.

‘문순C 감자’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최 지사를 지난 2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났다. “농가에 일손이 부족해 오늘도 곰취 캐는 걸 돕고 왔다”는 그는 “언택트(비대면) 시대가 앞당겨지면서 농수산물의 디지털 직접 유통이 더 대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정치와 통일, 경제, 정보기술(IT) 분야, 미래 먹거리까지 막힘 없이 이야기를 풀어갔다. 1차 산업에 발을 딛고 있는 동시에 눈은 4차 산업혁명 이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 지사는 “청정지역 강원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강점을 지닌 중심 도시로 빠르게 거듭나고 있다”며 “타다 사태처럼 기존 산업과 겪는 여러 갈등의 해법을 상생과 타협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농수산물의 온라인 직판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요.

"'감자 마케팅'처럼 협업·혁신했으면 타다도 달리고 있을 것"
“감자는 외식과 학교 급식 모두 판로가 막혀 있습니다. 농가의 생산비를 보전해주자는 목적으로 추진했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온라인과 택배 판매뿐이었습니다. 반신반의했는데 첫날 10만 명에 이어 다음날 100만 명, 하루 최고 250만 명이 호응해주더군요. SNS의 파급력을 실감했습니다.”

▷일부 ‘불량감자 논란’은 물론 농수산물 유통시장을 교란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불량 감자 부작용이 있었지만 농가와 농협 등이 협력해 반품과 환불 조치를 빠르게 시행했습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유통망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첫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죠. 시장 가격을 무너뜨린다는 지적은 과장됐다고 생각합니다. 포장비와 배송비를 도청이 지원하고, 농민에게는 원래 판매 가격을 지급해 당장 폐기로 인한 손해만 줄여주자는 취지였습니다.”

▷도지사 취임 후 10년간 ‘혁신’에 집중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혁신의 과정에는 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스마트팜(농업에 IT를 접목해 농업을 산업화하는 프로젝트)을 예로 들면 타다와 똑같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농가들이 스마트팜에서 배제되고 경쟁상대가 되다 보니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같은 곳이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조합 방식을 마련하고, 스마트팜 기술을 기업들이 제공한 뒤 이익을 배분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서히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노동 없는 사회’가 올 가능성이 있는데 그 길에서 이 같은 토론과 진통은 이제 상시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다가 강원도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제 ‘작을수록 이기는 시대’입니다. 몸집이 작아야 하고, 그래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정치도 기업도 다 그렇습니다. 타다가 강원 춘천지역에 국한됐다면 사회적 타협이 가능했을 겁니다. 택시산업과 함께 살아갈 길을 마련해줄 수 있었겠죠. 큰 문제를 한꺼번에 풀려고 하다 보니 해법을 찾기 전에 정치 투쟁이 돼버렸습니다.”

▷정치도 분권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총선을 지켜본 소감은요.

“한국 사회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구 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라고 하는 제가 60대 중반입니다. 그런 사회가 됐습니다. 대선 후보요? 요즘은 ‘선입선출’입니다. 먼저 뜬 사람은 먼저 떠나는 식이죠. 여론은 SNS를 통해 빨리 바뀌고,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와 템포가 달라졌어요.”

▷임기가 끝난 뒤 사회적 갈등을 중앙정치에서 풀어볼 계획이 있습니까.

“중앙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퇴임하면 남북한 간 경제협력과 화합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당장 경제가 문제입니다. 해법은 남북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북한엔 토지 가격이 없고, 임금은 개성공단의 경우 중국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100만원 들여 생산하는 제품을 북한에선 8만원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북한 인구 2500만 명을 생산 인구이자 소비 인구로 끌어내야 합니다.”

▷1차 산업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심 도시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강원도는 2차, 3차 산업에선 도태된 지역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청정 강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강점을 살려 수소경제, e모빌리티, 방사광가속기 단지 등 미래 먹거리를 현실성 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시대 첨단연구 클러스터가 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 유치, 제조업으로는 전기차 사업, 신에너지로 액화수소 리모델링 사업을 하고 있죠.”

▷강원도의 첫 전기차가 ‘포테로’라는 이름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전기차는 대기업이 없는 강원도에 알맞은 사업입니다. 저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횡성 우천산업단지 자동차 부품연구와 생산조합이 힘을 모아 내년부터 연간 5000대 규모로 생산할 계획입니다. 감자 ‘포테이토’와 인기 캐릭터 ‘뽀로로’를 합쳐 지은 ‘포테로’라는 이름의 소형 화물차가 첫 작품입니다. 인기 차종이었던 다마스가 내년 단종됩니다. 그걸 전기차로 만들고 대당 약 700만원에 판매한다는 계획입니다. 2024년까지는 2만 대 규모로 생산량을 늘릴 예정입니다.”

"미래 먹거리 '방사광가속기' 유치 총력"
다음달 6일 최종 프레젠데이션


최문순 강원지사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방사광가속기 유치다. 강원 춘천은 1조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를 놓고 전남 나주, 충북 청주, 경북 포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태양보다 100경 배 밝은 강력한 X선을 활용해 원자 크기의 물질 구조를 분석하는 첨단 연구시설이다. 세포의 움직임을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보거나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단백질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 반도체와 바이오 신약, 2차전지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 활용된다.

최 지사는 방사광가속기가 강원도의 미래 핵심 먹거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달 7일 후보지 최종 결정을 앞두고 6일 열리는 경쟁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한창이다. 최 지사는 “강원도가 2, 3차 산업에선 다소 뒤처졌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앞서 치고 나가겠다”며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오면 강원도에 6조7000억원에 달하는 생산유발 효과가 일어나고, 13만7000여 명의 신규 고용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의 가장 큰 장점은 수도권과의 접근성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춘천까지 차로 40분 거리다. 네 개 후보지 가운데 춘천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최 지사는 “국내 방사광가속기 이용자의 51.9%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며 “방사광가속기 구축 취지가 산업·연구 지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춘천은 최적의 입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전성 측면에서도 “춘천은 후보지 중 유일하게 지난 20년간 규모 2.0 이상 지진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태풍 등 자연재해 피해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적다”고 덧붙였다.

최 지사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국책사업을 펴는 데 정치논리가 개입돼선 안 된다”며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최문순은

최문순 강원지사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1984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해 보도국 사회부 차장, 인터넷뉴스부 부장대우 등을 지냈다. MBC 노조위원장 및 전국언론노동조합 초대위원장을 거쳐 2005년부터 3년간 MBC 사장을 맡았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민주당 원내부대표, 유비쿼터스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1956년 강원 춘천 출생 △1978년 강원대 영어교육학 학사 △1984년 서울대 영어영문학 석사 △2000년 전국언론노조 초대위원장 △2005년 MBC 대표이사 사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2011년 제36대, 2014년 제37대, 2018년 제38대 강원지사

김보라/박종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