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꼼꼼히 계산후 소신대로 직진 '마이크로 불도저'

터전 호남 다지기에 집중한 1년
금감원·금융업계·학계 두루 거쳐
추진력 뒤엔 남다른 꼼꼼함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지난 2월 20일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JB금융지주의 실적 발표 기업설명회(IR). ‘호실적의 이유’를 묻는 한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김기홍 JB금융그룹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호남지역 거점 영업을 강화한 전략이 효과를 냈고, 해외 자회사의 실적도 올라간 결과입니다.” ‘금융지주사 회장님’이 정기 IR에 참석해 직접 답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JB금융그룹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41.6% 늘어난 3419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3월 말 김 회장이 부임한 지 1년이 채 안 돼 올린 사상 최대 실적이다. 금융권에선 ‘불도저가 또 일을 냈다’는 말이 나왔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다부진 몸집. 불도저는 그와 닮았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솔직한 화법과 원칙을 정하면 주저 없이 밀어붙이는 업무 방식 때문에 생긴 별명이기도 하다.

쓴소리 마다않는 빈틈없는 소신파

김 회장은 ‘정통 금융맨’은 아니다. 그는 서울 경동고와 미국 바랫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주리대에서 경영학 석사, 조지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땄다.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위원, 보험개발원 연구조정실장을 거쳤다. 1999년엔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로 변신했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발탁했다. 이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망가진 금융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외부인사를 대거 수혈했다. 금감원 사상 최연소 임원(43세)이 된 김 회장에겐 내부 견제가 쏟아졌다.

보험업과 2금융권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우선 내부인사들과 보험사 간 유착을 끊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부당한 로비 등에 대한 제보를 받아 인사 조치를 해가면서 조직을 추슬렀다. 보험업계에선 ‘저승사자’로 통했다. 손해보험사에 사외이사 비중 확대를 요구했고, 생명보험사가 기업공개(IPO)를 할 경우엔 계약자에게 주식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보험사 주인이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 ‘동방금고·진승현 게이트’ 정국에서 진씨의 불법 대출 사실을 적발한 것도 그였다. 부실감독 논란에서 금감원을 구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불도저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다시 학계(충북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로 돌아가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지낼 땐 반대의견을 수시로 내는 ‘X맨 사외이사’로 유명했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를 강정원 당시 국민은행장이 눈여겨봤다. 수석부행장 겸 전략그룹 부행장으로 끌어들였다.

국민은행 거쳐 JB금융지주 회장으로

좌절도 적지 않았다. 2006년 외환은행 인수전을 이끌다가 막판에 고배를 마셨다. 매도자였던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매입할 당시 자본비율을 고의로 낮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상 인수를 강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오랜 협상은 물거품이 됐다. 김 회장은 “국민은행은 날개를 달려다 꺾인 것이지 절름발이가 된 것은 아니다”며 “독자적인 해외 사업 모델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KB금융의 지주사 전환을 이끈 뒤 ‘할 일을 다했다’며 조직을 떠났다.

2014년에는 재보험사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국내 재보험 시장의 독점 구조를 깨보겠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그해 말엔 KB금융회장 최종 4인 후보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김 회장이 JB금융으로 자리를 옮긴 건 KB에서 맺은 김한 전 JB금융 회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김한 전 회장은 2008년부터 2년여간 K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이때 김 회장을 눈여겨봤다. JB자산운용 대표로 영입한 배경이다.

2014년 김 회장의 대표 부임 전 JB자산운용의 운용 자산은 6981억원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정상으로 분류되는 자산은 2000억원 정도에 그쳤다. 김 회장은 글로벌 기관투자가와 국내 투자자들을 만나며 영업에 나섰다. 소형 자산운용사로선 이례적으로 해외 대체투자 강화를 목표로 삼고, 전문가를 데려왔다. JB자산운용 자산은 그가 지주회장으로 선임되기 직전인 2018년 말 5조5704억원으로 불어났다. 부임 당시의 여덟 배였다. 이 성공이 그를 JB금융지주 회장으로 이끌었다.

‘셈에 밝은’ 마이크로 불도저

회사 안팎의 예상대로 김 회장이 이끈 JB금융의 1년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지주사 15개 부서를 10개로 줄였고, 임직원 30%를 빼내 자회사 영업현장에 배치했다. 김 회장은 주요 보직에 외부인사를 영입했고, 지방 거점 금융지주사의 지상과제로 여겨지던 수도권 진출 대신 ‘내실경영, 지역경영’ 목표를 내세웠다. 수도권 점유율을 1%포인트 높이는 노력을 연고지인 광주·전남·전북으로 돌리면 8~10%포인트의 점유율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JB의 ‘약점’으로 평가받던 SNS를 통한 홍보 활동도 강화했다.

불도저의 역량은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JB금융의 지난해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총자산수익률(ROA)은 각각 10.18%와 0.77%로 은행 계열 금융그룹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그는 “몸담은 조직마다 잘된 건 순전히 운 덕분”이라고 겸손해한다. 스스로에 대해선 “셈이 밝으니 꼼꼼한 편이고, 꼼꼼하니 잔소리가 많은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그냥 불도저가 아니라 ‘마이크로 불도저’인 셈이다. 금감원을 거치며 수많은 자료를 접하다 보니 웬만한 숫자는 외워서 설명하는 습관이 붙었다. 지난해 상반기 IR 전에는 실무자들이 만든 두꺼운 자료집에서 여러 개의 숫자 오류를 잡아내기도 했다.

직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소통’이다. 이사회는 회장이 사내외이사들에게 회사 상황을 꼼꼼히 설명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부서장 이상만 참석하던 그룹 업무회의엔 과장급 이상 전원, 원하면 평사원도 자리를 채운다. ‘충분히 교감해야 이해를 얻고, 이해를 얻어야 문제를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김 회장을 잘 아는 금융권 인사는 “그는 평소 자택 정원을 꾸미는 게 취미”라며 “충분한 ‘땅 다지기’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아는 불도저”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작지만 수익성은 가장 높은 강소 금융그룹이 목표”라고 말했다.

■ 김기홍 JB금융 회장

△1957년 서울 출생
△1985년 미국 바랫대 경영학과 졸업
△1992년 미국 조지아대 경영학 박사
△1999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2001년 충북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2005년 LG화재해상보험 사외이사
△2008년 국민은행 지주회사설립기획단 부행장
△2014년 팬아시아리컨설팅 대표이사
△2014년 JB자산운용 대표
△2019년~ JB금융그룹 회장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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