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쿠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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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한때 ‘일자리 킬러’로 불렸다. 아마존의 공격적 경영으로 ‘유통공룡’들이 무너지자 온라인 유통업이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음놓고 사람 뽑는 아마존…시간제 알바만 늘리는 쿠팡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 같은 인식을 확 바꿔놨다. 아마존은 어느새 ‘일자리 창출 공신’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풀타임 직원 10만 명을 고용한 데 이어 이달 초 7만5000명을 추가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실업자가 하루 200만 명, 지난 4주간 2200만 명 쏟아진 가운데 나온 뉴스다.

‘한국판 아마존’을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 중인 쿠팡은 어떨까. 쿠팡은 지난해 거래량 10조원 돌파, 적자 3000억원 감축이라는 기록을 쓰며 한국판 아마존이란 꿈에 다가서고 있지만 고용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해 말 기준 쿠팡의 고용 인원은 3만 명. 올해 코로나19로 매출 폭증과 배송 지연 사태가 있었지만 추가 고용은 8000명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시간제로 배송 업무를 대신해주는 단기 아르바이트직이 대부분이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쿠팡의 채용 인원이 아마존보다 적은 것은 기본적으로 두 회사의 규모가 다른 데 이유가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양국 간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는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법이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쿠팡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계약직 채용 2년 뒤 정규직 전환이 의무화돼 있는 ‘쿠팡맨’ 고용보다 시간제 알바 채용만 대거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언택트(비대면) 비즈니스와 온라인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고려할 때 노동법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 교수는 “숙련된 노동자와 근로자가 중심이 되는 제조업 기반 사회에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최우선이었다면, 서비스업과 정보기술(IT)이 중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노동력의 빠른 재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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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대혼란을 막아줬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근 2~3년간 빠르게 성장했고, 전국 어디에나 갈 수 있는 배송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송 업체는 모바일로 필요한 것을 언제든 살 수 있는 ‘안전망’이 되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사재기 심리를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 1분기 쿠팡 결제액은 4조8400억원. 지난해 전체 거래액(10조원)의 절반이 1분기에 거래된 셈이다. 초고속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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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비대면) 시대로의 대전환에 앞장선 기업이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면 초라하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 더 유연한 고용시장을 원하는데도 현재 노동법은 한 번 고용하면 해고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방식으로 너무 경직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알바’로 돌아가는 배송·물류시장

3만 명에 달하는 쿠팡의 임직원 중 배송을 담당하는 직원의 약 30%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당일 계약된 물량을 처리하는 일자리(프리쿠팡맨) 또는 개인 차량으로 운송하는 단기 일자리(쿠팡플렉스)다. 쿠팡은 쿠팡맨을 뽑아 계약직 2년을 거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전환율은 약 94%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청년 단기 일자리인 쿠팡플렉스와 프리쿠팡맨 등을 만들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시장을 연 마켓컬리 역시 2500명 직원 중 정직원은 500명. 물류 2000명 중 150명의 직접 고용 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위탁 사업자다. 마켓컬리도 주문량이 많을 때 대부분의 물류센터 근로자를 외부 업체에서 공급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주문 불가와 배송 지연, 오배송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들 기업은 아르바이트 청년을 고용해 대응했다. 하루 시급 구조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비용을 늘리거나 줄였다.

유연한 일자리 막는 낡은 노동법

제조업과 수출 기반의 사회에서는 ‘업무 숙련도’가 가장 중요했다. 유럽식 노동법이 그렇다. 해당 근무를 오래 한 직원이 다음 세대에 이를 물려주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했다. 하지만 서비스와 정보기술(IT) 기반 사회는 다르다. 노동력을 뒷받침할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더 빠르게 적용할 노동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분석이다.

노동자들의 관점도 변했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소속감과 근무지를 원하는 반면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시간만큼만 일하길 원한다. 배달의민족 라이더 상당수가 소속 없이 여러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플렉스 등 단기 일자리는 육아맘이나 대학생 등 소속 없이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렸다”며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고용을 하루평균 4000명에서 1만2000명까지 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인식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정부와 노동계는 이분법에 빠져 있다.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마치 ‘나쁜 기업’인 것처럼 몰아간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비정규직보다 더 불안정한 형태인 단기 알바 등의 고용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개념 대전환

반면 미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사실상 없다. 미국의 노동관계법은 노동자와 종업원, 독립계약자로 분리하고 종업원에게만 노동관계법을 적용한다. 비정규 노동자도 종업원으로 인정되면 정규직과 동일한 법을 적용받는다. 가장 큰 차이는 해고의 자유도다. 미국 근로자는 별도의 노동계약이 없으면 임의고용으로 간주된다. 아무런 사유 없이 해고될 수 있다. 고용인은 퇴직금이나 위로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근로자들은 불안감이 크다. 하지만 해고와 재고용의 자유도가 높은 만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뛰어난 것도 사실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빠른 경제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회복탄력성이 높은 경제’라고 부르는 핵심 근거가 노동유연성이라고 말한다. 국내에는 제조업 기반 사회에서의 ‘낡은 노동법’이 자리하고 있어 서비스업과 IT 중심 시대에 기업의 빠르고 유연한 노동력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다양한 고용과 손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고용 형태의 유연성을 담보해줘야 민간 부문의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며 “실업급여나 고용유지 지원금만 남발하는 정책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