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연일 급락하면서 국내 정유회사들은 패닉에 빠져들고 있다. 통상 국제 유가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면 정유사에 이득으로 작용하나 최근엔 유가가 전례없는 속도로 추락하면서 손실 규모가 역대급으로 불어나고 있다. 올 들어 넉 달 동안 국제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20달러 안팎으로 3분의 1 토막이 됐다.

정제마진 한달 넘게 마이너스인데…바닥 모를 유가 추락에 정유사 '패닉'
2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제마진은 지난달 셋째주 배럴당 -1.9달러를 기록한 뒤 이달 셋째주(-0.1달러)까지 4주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정유회사 관계자는 “정제마진 수치는 고도화 공장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실제 역마진은 이보다 10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였다. 원유 매입 가격보다 정제를 거친 뒤 파는 제품 판매 가격이 더 낮아 역마진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원가보다 싼 가격에 팔 수밖에 없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산유국의 감산 속도보다 더 빨리 석유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SK이노베이션(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의 1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분기 영업손실은 이보다 더 클 전망이다. 석유 수요 감소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에선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 석유 수요가 많은 주요 국가에선 이달 들어 확산세가 크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정유회사들은 조기 정기보수 등을 통해 공장 가동률 낮추기에 나섰다. 현대오일뱅크가 올 하반기 예정된 충남 대산의 제2공장 정기보수를 이달 8일부터 앞당겨 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정유사들도 앞다퉈 보수 시기를 조기에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공장 가동률을 100%에서 85%로 낮춘 SK에너지는 울산 공장의 정기보수를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쓰오일도 조만간 정기보수 계획을 발표할 방침이다. GS칼텍스는 진행 중인 여수 공장의 정기보수가 끝나도 가동을 바로 하지 않고 늦추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 정유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정유사 2분기 영업손실액은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커지고 있다”며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을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