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서울 신문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극복 위한 노사정 합의 선언'에 참석한 문성현 위원장(맨 오른쪽)과 경영·노동계 대표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경DB
지난달 6일 서울 신문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극복 위한 노사정 합의 선언'에 참석한 문성현 위원장(맨 오른쪽)과 경영·노동계 대표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경DB
지난 1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코로나19 위기극복 항공산업 노사정 간담회’를 열었다. 경사노위가 아니라 항공 관련 노조인 전국연합노조연맹의 요청으로 열린 간담회였다. 업계에선 한국공항 등의 임원들이, 정부 쪽에선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과장급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논의하지 못하고 항공산업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경제위기 때마다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경사노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경사노위로 개편된 이후 누적돼온 활동 실패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많다.

존재감 사라진 경사노위

1998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경사노위(출범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각종 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 도입을 위한 노동계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이를 토대로 기업들은 고용 부담을 크게 줄이며 외환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이후 2004년 카드 대란으로 경제가 흔들릴 때는 경영계를 설득해 고용 확대를 위한 일자리 만들기 협약을 이끌어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를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편과 관련해 합의안을 내지 못하고 3개 안을 작년 8월 국회에 넘긴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문 대통령 임기 내 개편이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2018년 11월부터 논의해온 금융권 임금체계 개편 논의도 노동계의 반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올 2월 관련 활동을 끝냈다.

코로나로 노사 타협 급한데…경사노위 안보인다
경사노위는 코로나19 사태 극복 과정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영계와 노동계 사이의 견해차가 커 양측의 실질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서다. 경영계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저성과자 해고 규정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구조조정에 따른 해고도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합의기구 대표성도 떨어져

전문가들은 과거 정부와 비교해 볼 때 현 정부의 사회적 합의 의지가 부족해 ‘경사노위의 식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사노위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힘을 받고 국회 등에서도 합의 내용을 존중받을 수 있는 조직”이라며 “문 대통령은 임기 초반 경사노위를 통해 각종 합의안을 마련했던 과거와 대비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친(親)노조 정책으로 경영계로선 경사노위에 참여해도 얻을 게 별로 없다는 점 역시 문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번 정부는 기업을 합의의 상대가 아니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도 기업들은 경사노위에 잘못 끌려가면 필요한 구조조정도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사노위가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대표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고용부 조사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조합원 수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누르고 제1 노총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1998년 경사노위를 박차고 나간 뒤 복귀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도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이외의 사회적 대화 틀을 요구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