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경제 정책 'again 2017'로 가나
21대 총선이 마무리되면 정부·여당의 관심은 빠르게 '경제'로 옮겨갈 전망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이 22년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하는 등 경제 분야의 과제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유력해짐에 따라 정부와 여당이 '소득주도성장'의 가속페달을 다시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친(親)노동’, ‘큰 정부’, ‘복지국가 실현’이란 정책 기조를 3년 내내 밀어붙였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그 강도는 조금씩 약해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업체 타격, 퍼주기 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등 부작용이 커진 탓이다. 경제성장률마저 3.2%(2017년) → 2.7%(2018년) → 2.0%(2019년)으로 추락했다. 이에 정부는 작년부터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공식화했고, 혁신성장 정책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작년말 발표한 125쪽 분량의 ‘경제정책방향’에선 현 정부 트레이드마크였던 ‘소득주도성장’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가 달려졌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집엔 정리해고 요건 강화, 재벌 경제범죄 처벌 강화 등 현 정부 초기를 연상케 하는 정책들이 즐비하다. 기초연금, 근로장려금(EITC) 등 복지 확대 속도도 더 빨라질 전망이다.

◆해고는 어렵게, 대기업 규제 더 세게

민주당은 향후 4년간 추진할 정책을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만들었다. 노동자, 특히 대기업·정규직 근로자가 대부분인 노조 기득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더 가열차게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은 공약집을 통해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명예퇴직 시 근로자대표 동의 법제화’ 추진을 약속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업 대란 우려 목소리가 커지는 데 편승해 이런 노동규제를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저성과자마저 해고가 어려워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은 작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 ‘노동시장 유연성’ 부문에서 141개국 중 97위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1년 미만 근속 노동자 퇴직급여 보장도 추진할 방침이다. 단기 근로자를 많이 쓰는 자영업자 사이에선 벌써부터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 그간 추진해왔던 정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옥죄기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선거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지난 5일 “스타필드 롯데몰 등 복합쇼핑몰 입점을 제한하고 의무휴일을 두게 하겠다”고 밝혔다. 대형마트에 적용하고 있는 유통 규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관철도 예고한 상태다. 재계가 “경영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하는 재벌 일가 경제범죄 처벌 강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내용이 담긴 법이다.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만들기’가 재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작년부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지만, 여당 일각에선 “처음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복지 확대 탄력 붙을 듯

복지 지출은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소득 하위 70% 노인(65세 이상)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대표적이다. 정부·여당은 내년 모든 기초연금 대상자의 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2018년 기초연금액 20만원 → 25만원 일괄 인상, 작년 소득하위 20% 30만원 상향 → 올해 20~40% 30만원 상향에 이어 4년 연속 인상이다. 저소득 근로자를 지원하는 EITC 인상도 추진된다. 민주당은 공약집에서 EITC 최대 지급액(맞벌이 가구 기준 연 300만원)을 올리겠다고 했다.

노인일자리 공급도 늘어난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어르신들에게 환경 미화, 교통 안내 등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44만개에 그쳤던 노인일자리를 올해 74만개까지 늘렸는데, 앞으로 4년간도 매년 10만개씩 확대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면 2024년엔 114만개에 이르는 셈이다. 노인일자리 확대로 취업자 총량이 뛰면서 고용 통계가 양호한 것처럼 나오는 ‘착시 현상’이 심해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복지 확대는 재정 지출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 예산만 해도 정부 계획대로 내년 추가 인상이 이뤄질 경우 2025년 27조2000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추산된다. 작년 예산(14조7000억원)의 2배 수준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총선 공약을 모두 이행하는 데 2021~2024년 99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올해 523조원(추가경정예산 기준)인 연간 예산이 600조원 이상으로 불어난다는 얘기다. 이는 재정 적자 확대 → 나랏빚 급증 → 대외신인도 하락 등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혁신성장은 더 강화할 가능성

신산업 육성 등을 지원하는 혁신성장 정책은 최근의 강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공약집에도 혁신성장은 10대 정책과제 가운데 첫째로 제시됐다. 정부·여당도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소득주도성장만으로는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조업 혁신성장 및 경쟁력 강화 특별법’ 제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제조업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융합해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키자’는 내용이다. 시스템반도체와 미래차,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된다. 정부는 이들 산업을 메모리반도체에 이은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꼽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혁신성장 정책을 앞세우고 있지만 원격의료, 공유경제 등 주요 혁신 산업 분야 갈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아 구호에만 그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