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자동차 생산공장 열 곳 중 일곱 곳이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됐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북미 지역에서만 3만2000명을 일시 해고했다.

판매 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영업망이 망가지고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서다. 이탈리아에선 지난달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85.4% 급감했다. 프랑스에서는 72.2%, 스페인 69.3%, 미국에선 37% 줄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작년 대비 13%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것도 코로나19가 2~3개월 내 종식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 아래에서다.

이번 사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위기라는 게 자동차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기회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체질 개선 속도를 높이면 미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세계공장 70% 셧다운…車업계 '생존형 짝짓기' 속도낸다
속도 붙는 글로벌 합종연횡

전문가들은 자동차그룹 간 합종연횡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은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손을 맞잡고 돌파구를 마련해왔다. 르노·닛산얼라이언스(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연합)가 대표적이다. 닛산은 199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로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르노는 그런 닛산의 지분을 사들여 연합체를 꾸렸다. 이후 미쓰비시까지 합세하면서 세계 3위 자동차그룹으로 올라섰다.

이탈리아와 미국의 합작 기업인 FCA그룹과 프랑스 PSA그룹은 작년 11월부터 합병 절차를 밟고 있다. FCA그룹은 피아트·크라이슬러·지프·마세라티를, PSA는 푸조·시트로엥·오펠 등을 보유한 거대 완성차업체다. 합병을 완료하면 세계 4위(판매량 기준)로 몸집이 불어난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PSA 회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합병 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신차를 공동 개발하는 데 힘을 모으려는 업체도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일본 혼다자동차 얘기다. 이들 기업은 이달 초 전기차 2종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GM이 플랫폼과 배터리 기술을 제공하고, 혼다는 차량 내외관을 디자인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2024년 북미에서 첫 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완성차업체 간 협력은 업종을 넘나들기도 한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2월 중국계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포니닷에이아이에 4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출시를 위해서다. 도요타는 지난달 또 다른 협력 계획을 내놨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모멘타와 함께 자동 고해상 지도 제작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미래차 중심으로 구조조정

미래자동차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도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큰 트렌드다. 내연기관차 중심이던 완성차업체들은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던 지난달 GM은 미래 비전을 공개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2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는 게 핵심이다. 수익성과 경제성이 높은 배터리 기술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다.

BMW그룹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25년까지 미래형 모빌리티 연구개발(R&D)에 300억유로 이상 투자할 계획이다.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20억유로를 절감하는 한편 신규 모델 개발 기간도 종전의 3분의 1로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각 회사들은 전통적인 기계 기술 중심의 인력 구조를 소프트웨어 부문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폭스바겐은 2023년까지 최대 4000개 일자리를 줄이기로 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대신 디지털 기술 관련 신규 일자리를 2000개 창출하기로 했다. 이 중 일부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전담기구에 배치한다. 이 전담기구는 자동차 운용 시스템, 디지털 통합 시스템, 새 모빌리티 시스템 등을 맡는 조직이다. 회사 측은 이 조직을 2025년까지 1만 명 이상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조직으로 키울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신사업도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게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한 차세대 전력 공급 프로젝트다. 배터리에 에너지를 축적한 뒤 전력회사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2030년까지 최대 1테라와트(TW·1TW=1조W) 규모의 전력 저장능력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부품 조달도 지역별 다변화

부품 조달처의 다변화도 완성차업체들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산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생산 차질을 빚은 업체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도요타, PCA 등은 중국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공장을 일시 멈춰 세워야 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유럽 완성차업체들은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2월에만 25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2월에 중국산 와이어링 하네스(전기 배선장치) 공급이 잠시 끊기면서 현대·기아자동차 등이 잇달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쌍용자동차의 경기 평택공장은 유럽산 부품 조달 차질로 생산라인별로 순환 휴업을 하기도 했다.

글로벌 부품 공급망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보쉬(인젝터), 콘티넨탈(엔진 부품), ZF(에어백) 등 주요 유럽 부품사들은 여전히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들 공장이 이른 시일 내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국 중국 등의 완성차 공장들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완성차업체들이 자동차 부품을 중국 등 일부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 위축이 심화하고 있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자동차 수요가 금방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완성차업체들이 위기 장기화에 대비해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