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햇감자를 100g당 598원에 판매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12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햇감자를 100g당 598원에 판매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감자는 요즘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작물이다. 지난해 말 감자값이 20kg 한 상자에 1만원대로 추락하면서 '감자 농가 살리기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다. 방송인 백종원이 나서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가세했다. 이마트에서 '못난이 감자 팔아주기 운동'이 벌어졌다. 지난 달엔 강원도지사가 10㎏ 감자 한 상자를 택배비 포함 5000원에 팔았다. 순식간에 완판되면서 구매 전쟁을 공연 티켓 구하듯 한다는 뜻의 '포켓팅'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2주간 20만6000상자를 팔았다.

감자값이 싸다는 소식에 지난 주말 마트와 슈퍼마켓을 찾는 소비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나온다. 감자값이 싸기는 커녕 연초보다 더 비싸졌기 때문이다. 12일 대형마트에서 감자 100g 평균 가격은 498원. 서울 시내 마트에선 600원까지도 올랐다. 뉴스와 온라인에서 판매된 산지 직송 가격에 비해 약 5배나 비쌌다. 왜 그럴까.

감자라고 다 같은 감자가 아니다

산지 감자 5000원인데 마트 가격 8만원인 까닭
격이 폭락했다고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감자는 모두 '저장감자'다. 지난해 6~7월 수확해 저장해뒀다가 연말연초 감자값이 연중 가장 비쌀 때 팔려고 했던 감자들이다. 저장감자의 평균 저장 기간은 8~9개월. 이 감자들은 일반 소비자들의 식탁 위에는 거의 오르지 않는다. 꾸준히 소비하는 전국의 식당과 회사와 학교의 단체 급식 등에 풀린다.

일반 가정의 식탁 위에 오르는 감자는 일명 '햇감자'다. 지금은 추운 겨울 하우스에서 자란 '하우스 감자'를 주로 먹는다. 이들 시세는 저장감자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움직인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슈퍼마켓 등 일반 소비자가 접하는 유통 채널에서는 100% 하우스 감자를 취급한다. 대형마트는 중도매인이나 산지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농가와 직거래 하는 비중이 90%를 넘는다. 지난 달 저장감자가 20㎏ 한 박스에 5000원~3만원일 때도 하우스 감자는 한 박스에 10만원에 거래됐다. 현재도 7~8만원대다. 이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저장감자가 아니라 무조건 햇감자를 선호한다"며 "저장감자는 마트 등 소매 유통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자는 1년에 네 번 수확한다. 3~5월에는 하우스봄감자, 6~7월에는 노지봄감자, 8~11월은 고랭지 감자를 생산한다.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가을감자가 시장에 나온다. 노지봄감자와 고랭지 감자는 연중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공급량이 많으니 가격은 연중 가장 싸다. 농가들은 겨울이 되면 감자값이 비싸질 것에 대비해 이 시기 가장 많은 양을 저장한다.

산지 가격 폭락이라는 '거짓말'

산지 감자 5000원인데 마트 가격 8만원인 까닭
지난해 말 감자값 폭락을 부른 건 공급과잉 때문이다. 노지봄감자와 고랭지 감자의 지난해 생산량은 급증했다. 전년보다 30% 이상 늘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60만t을 넘어섰다.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감자를 비축 품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장된 감자를 소비할 곳은 줄었다. 외식 경기가 침체됐고, 주52시간제 정착 등으로 기업에서 단체급식 소비량도 크게 줄었다. 올 초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활성화, 개학 연기는 감자 농가에 치명적이었다. 가장 비싸게 팔아야 할 감자를 사줄 데가 없으니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가격이 폭락한 감자는 결국 작년 6월에 캔 '저장감자'다. 일반 소비자들은 살 수 없는 유통 경로에서 소비되는 묵은 감자였던 것.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농부들을 돕는다며 택배비만 받고 싸게 팔아준 감자도 결국 대부분이 '썩은 감자'여서 환불 조치하는 해프닝도 저장 감자의 유통기한이 다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저장감자도 폐기처분하기 직전인 때"라며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괜히 강원도 지역 농산물의 이미지만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감자 농부 진짜 도우려면

국내 생산되는 감자 중 가공식품으로 쓰이는 비중은 20% 미만이다. 미국과 네덜란드, 일본은 모두 40%를 넘는다. 바로 먹지 않고 튀김용, 전분, 과자 등으로 가공돼 유통된다. 국내에선 생감자 형태로 주로 소비되다보니 시세에 따라 폭락과 폭등을 반복한다. "감자 한알이 전복 두 마리 값과 맞먹어 감자탕에 감자가 사라졌다"고 한 게 불과 1년 반 전이다.

반면 가공식품으로 쓰이는 감자는 기업과 산지 간 '계약재배'가 이뤄진다. 시장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기업이 매입한다. 농부는 시세와 상관 없이 좋은 품질의 농산물만 생산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오리온, 농심, 해태제과 등 제과 3사가 이런 방식으로 거래한다. 종합식품회사의 국산 농산물 소비 비중은 10%를 겨우 넘는다.

한 대형 식품회사 고위 관계자는 "가정간편식(HMR) 등 개발을 많이 하지만 국산 농산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없어 가격 싸고 손질 잘된 수입 농수산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는 감자 가격은 5월 15일 이후 노지 햇감자가 본격 출하되면서 안정될 전망이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팀장은 "노지 봄감자 재배 면적은 올해 전년보다 10.4% 좁지만 평년보다는 6% 넓다"며 "4월 수미감자 출하량은 전년 대비 19.8%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