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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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일명 ‘n번방’ 주도자와 가입자들이 가상화폐로 결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상화폐의 특성인 ‘익명성’ 탓에 신상 추적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업계는 가상화폐 거래를 한 구매자 대부분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거래소들 “n번방 수사 적극 협조”

업계에 따르면 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 등 주요 국내 가상화폐거래소들은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수사당국에 협조하기로 했다. 해당 거래소들은 회원 정보와 거래 내역 등이 담긴 명단을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빗썸 관계자는 “국민적 공분을 사는 현안인 만큼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인원도 “n번방 사건 수사 협조 요청에 누구보다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n번방 개설자들은 텔레그램 유료 대화방 회원들에게 입장료로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H)·모네로(XMR) 등의 가상화폐를 받았다. 이 가운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일반 가상화폐는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기록돼 추적이 용이하다. 문자와 숫자가 복잡하게 조합된 익명의 가상화폐 지갑 주소로 전송하는 결제 방식이긴 하지만 거래 내역 자체는 위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상에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n번방 개설자들은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계속 분할 전송한 뒤 합치는 과정을 반복하는 ‘믹싱 앤드 텀블러’ 기법을 사용했다. 다만 이 같은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최근에는 가상화폐 추적 기술이 발달해 역추적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익명 가상화폐 모네로 ‘추적가능’

문제는 모네로다. ‘다크 코인’ 일종인 모네로는 철저하게 익명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특정 거래 내역이 일절 공개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얼마를, 누구에게 보냈는지 등의 정보가 남지 않아 송금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이런 특성 때문에 n번방 참여자들도 모네로를 거래에 많이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모네로를 이용해 유료 단톡방에 접근한 구매자들의 경우 특정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매자들이 가상화폐를 구입하려면 국내 거래소나 구매 대행업체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국내 주요 가상화폐거래소는 고객신원인증(KYC)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어 거래소가 협조하면 신상을 밝힐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빗썸에 상장된 모네로를 구입 또는 전송하면 거래소 내에 고객 정보와 거래 내역이 남는다.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덕분에 사실상 익명성이 없어져 오히려 추적이 용이해진 것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모네로의 익명성은 개인 지갑끼리 이동하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며 “거래소를 통하면 결국 모네로의 익명성과 상관없이 거래소에 가상화폐를 구매한 기록, 송금 내역 등이 기록돼 구매자를 특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n번방 유료 대화방 회원 대다수는 가상화폐 구매대행업체와 거래소 등을 통해 가상화폐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상화폐 구매자의 신상 정보를 비롯해 가상화폐 구매·전송 등 거래 내역 확인을 통해 처벌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현금거래보다 추적 더 용이”

지난해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내놓은 가상화폐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은 기존 금융권에 적용되는 수준의 ‘트래블룰(송·수신자 간 개인식별정보 확인 절차)’을 적용하고 KYC 절차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이달 5일 가상화폐 거래소 등이 지켜야 할 규제 등을 명시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가상화폐거래소에도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처럼 제도권 편입으로 모네로 등 다크 코인은 국내 거래소에서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빗썸·코인원 관계자들은 “n번방 가담자들은 가상자산(가상화폐)을 전송해 참여권을 획득한 것으로 보이지만 가상자산은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특금법 개정안은 AML을 골자로 하는 데다 어떠한 자금도 익명 거래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상자산 거래소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