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용자가 인터넷으로 다크웹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사진=한경DB
한 이용자가 인터넷으로 다크웹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사진=한경DB
“입장료는 ‘모네로’로 받습니다.”

성(性)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일명 ‘박사방’의 거래는 은밀하게 진행됐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는 2018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텔레그램에서 유료 대화방을 운영했다. 이곳에서 여성을 협박해 촬영한 성착취물을 유통시켰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가상화폐로 입장료를 내야 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도 취급했지만 주로 ‘모네로’라는 가상화폐를 이용했다.

모네로는 일본 야쿠자(폭력단) 등 해외 범죄조직이 단골로 이용하는 자금세탁 수단이다. 송금액, 송금 주소 등 거래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모네로는 범죄에 최적화된 가상화폐”라고 입을 모았다. 별명도 ‘다크 코인’이다. 조씨 역시 모네로 등 가상화폐로 입장료를 받으면서 경찰 추적을 따돌리려 했다. 경찰들은 “또 가상화폐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성범죄는 물론 각종 범죄의 거래 수단으로 가상화폐가 악용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서다.
추적 어려운 '다크코인'…돈세탁·마약 거래·n번방 악용
못 찾겠지?…가상화폐로 수십억 챙겨

10일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텔레그램 유료 대화방에 입장하려는 회원들에게 모네로 등 가상화폐를 요구했다. 입장료를 받는 매뉴얼도 만들었다. 회원들이 가상화폐 구매대행업체인 A사에 모네로 구매를 의뢰하도록 했다. 1모네로 가격은 6만9000~7만원. 영상 수위에 따라 입장료는 달랐다. 1단계 방은 20만원, 2단계 방은 70만원, 3단계 방은 150만원어치의 모네로를 내야 했다. 2단계부터는 아동 성착취물을, 3단계 방에선 피해자의 신상 정보까지 공유했다.

회원이 A사에 현금을 지불하면 A사는 모네로를 구입해 회원에게 전달했다. 회원은 구입한 모네로를 조씨가 지정한 모네로 주소로 보냈다. 조씨는 환전을 담당하는 직원도 뒀다. 강모씨 등은 가상화폐거래소에서 모네로를 현금으로 바꿨다. 환전한 돈은 조씨가 고용한 또 다른 직원 김모씨 등이 택배나 계좌이체를 통해 조씨에게 전달했다. 조씨의 가상화폐 지갑에 들어온 금액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가상화폐를 악용하는 사례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가상화폐와 결합하면서 그 규모가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범죄자들이 가상화폐는 이체 내역 등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을 믿고 거래한 경우가 많다.

2013~2017년 운영된 불법 성인 웹사이트 ‘AV수눕’의 거래 수단도 가상화폐와 문화상품권이었다. AV수눕은 성인비디오(AV)에 염탐꾼이라는 뜻을 가진 ‘snoop’의 합성어다. 몰래카메라 영상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 주로 거래됐다. 가상화폐를 얼마나 결제하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음란물 수위가 달랐다.

2015년 다크웹에 개설된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모씨도 성착취물로 가상화폐 수익을 올렸다. 그는 2년8개월간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동영상 22만여 건을 유통해 4000여 명으로부터 7300여 회에 걸쳐 415비트코인(당시 약 4억원)을 챙겼다.

모네로는 가상화폐 중에서도 익명성 높아

조씨는 여러 가상화폐 중에서도 모네로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네로는 ‘가상화폐계의 스위스은행’으로 통한다. 그만큼 다른 가상화폐에 비해 익명성이 높다. 거래 이력을 확인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전자서명이 아니라 ‘링 서명’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링 서명은 가명과 가짜 기록을 남기는 방식의 서명이다. 비트코인 등 일반적인 가상화폐는 전자서명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사용 이력을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네로엔 전자투표에서 사용하는 ‘믹싱’이란 기술도 쓰인다. 익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가상화폐를 여러 개의 가상화폐 주소로 나눴다가 다시 합치는 방식이다. 예컨대 100만원을 보낸다면 10만원, 20만원, 30만원, 40만원으로 쪼개 보내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모네로는 각종 범죄에 자주 악용된다. 돈세탁, 마약 거래는 기본이다. 가상화폐거래소에선 모네로의 퇴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익명성이 높은 가상화폐가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업계 전반에서 심각하게 보는 분위기”라며 “내년 3월부터 개정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국내 가상화폐거래소에선 모네로가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빙산의 일각…“추적 기술 만든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는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블록체인 포렌식 업체인 사이퍼트레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 범죄로 인한 손실은 45억2000만달러(약 5조5099억원)다. 2018년 17억4000만달러(약 2조1211억원)에서 2.5배 이상 늘었다. 단순 범죄뿐 아니라 사기나 횡령 등 여러 방면에서 가상화폐가 악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 전문가는 “통계로 집계되지 않은 금액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상화폐에 대한 추적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크웹 등에 범죄자가 올린 가상화폐 지갑 주소를 기반으로 추적할 수 있다. 다만 이 주소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가상화폐거래소의 공조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에 기반을 둔 가상화폐거래소까지는 접근이 어렵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이달부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범죄에 악용되는 가상화폐 거래 정보를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가상화폐거래소까지 적용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에 대한 추적 기술을 먼저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도 모네로까지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하긴 어렵다고 KISA 측은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나 다크웹을 둘러싼 범죄를 집중 수사하는 전담조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온라인 암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어서다. 문종현 이스트시큐리티 시큐리티대응센터(ESRC) 센터장은 “이번에 드러난 n번방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계속 모니터링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또 다른 ‘어둠의 경로’가 생겨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화이트해커는 “가상화폐거래소나 대행업체를 거치면 결국은 추적된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개인 간 거래(P2P) 방식으로의 범죄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n번방’ ‘박사방’ 등을 계기로 관련 모방 범죄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는 사람만 알던’ 어둠의 경로가 대중화돼서다. 또 다른 가상화폐 전문가는 “모네로가 뚫린다면 더 치밀한 구조의 또 다른 가상화폐를 찾아내 추적을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김남영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