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신임 중소기업연구원장 "30년간 中企 곁에서 훈수…이젠 현장서 위기 챙길 것"
“30년 동안 중소기업을 연구하며 곁에서 훈수만 두다가 덜컥 전쟁터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이네요.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지난 1일 제7대 중소기업연구원장에 취임한 이병헌 원장(54·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업종이 없을 정도로 지금은 전시(戰時)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중소기업의 중·장기적 발전 방안을 연구해 정책을 제안하는 전문연구기관이다.

이 원장은 KAIST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4년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 및 혁신 관련 연구를 해온 그는 광운대 경영대학장, 한국전략경영학회장 등을 지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시기에 실질적인 중소기업 육성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 원장은 “여유 있는 중소기업들이 보통 위기 상황에 대비해 한 달 반 정도 버틸 자금을 갖고 있다고 보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이 현실화된 것이 벌써 두 달이 넘었다”며 “중소기업의 신용위기가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원장은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장기불황에 대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의 중소기업 대책은 3~6개월 정도의 브리지론(단기 대출)을 공급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 대책들은 V자 반등 회복을 가정하면 충분하지만, U자형 회복 또는 L자형 장기불황에 대비하는 대책으로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중요한 것은 고용유지 대책”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 기업은 결국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그로 인한 대규모 실업으로 가계가 파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참사를 막기 위해 이 원장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일부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저임금을 또 대폭 올리거나 고용의 안정성만 고집하면 코로나19 쓰나미에 실업이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 원장은 신산업 분야에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초고속 인터넷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것이 정보기술(IT)산업 성장 등 위기 극복의 계기가 됐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데이터산업과 헬스케어산업 등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의 연구원 계획을 묻는 말에 “모험자본 시장을 육성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처럼 벤처·중소기업 창업이 활발한 국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캐피털 등 모험자본 규모가 한국의 세 배 수준”이라며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을 위해 10조~15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국내 모험자본 시장을 50조원 규모로 끌어올릴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