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바로 꽂아주는데…정치 논리에 '누더기' 된 코로나 지원금
◆美 알기 쉽고 공감되는 기준 vs 韓 “아무도 몰라”…불공정·박탈감 초래
미국과 한국의 코로나지원금의 가장 큰 차이는 지급 기준 및 대상이다. 미국 기준은 ‘연봉 9만9000달러 이하면 준다’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봉 10만달러 이상을 부유층으로 본다. ‘여섯 자리(six figure) 연봉’이라는 말까지 있다. 한국의 ‘억대 연봉’과 비슷한 뜻이다. 국민들이 자신이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고, 납득하기도 쉽다. 미국 정부는 또 연봉이 7만5000달러를 넘으면 소득 100달러당 5달러씩 지원금이 깎이는 차등 지급 방식을 택했다. 연봉 10달러 차이로 누구는 1200달러를 받고 다른 누구는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불공평을 막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은 ‘소득 하위 70%’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세웠다. 여기에 자산까지 포함되면서 국민은 물론 정부조차 지원금 수혜 대상을 알 수 없게 됐다. 지원금 지급에 자산이 포함되면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거주자들은 수급 대상에서 대거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아무리 큰 타격을 받았더라도 집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상위 30% 계층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는 국민들의 박탈감도 만만찮다. 코로나지원금을 계기로 “전체 세금의 대부분을 내는 건 상위 30%인데 이래도 되느냐”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는 무조건 100만원을 주고 상위 30%에게는 전혀 주지 않는 지급 방식도 문제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이 소득 상위 30%에 간신히 들어가는 가구보다 많아지는 ‘소득 역전’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美 “4월 중 신속 지급” vs 韓 “일러도 6월”…“당장 쓸 돈이 없다”
미국 정부는 이달 중 국민들의 통장에 지원금을 넣어 줄 계획이다. 지원 기준이 명료해 지난해 연말 받았던 연말정산 자료를 활용하면 빠르게 행정 처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재산을 얼마나 반영할 지, 어떤 정보를 활용해 하위 70%를 추려낼 지 기준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세청 과세 정보 등 정부 내부 자료만으로 기준을 정한다 해도 두 달은 걸린다”고 했다. 이런 작업을 감안하면 코로나지원금은 일러야 6월에나 지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발표 후 세 달 넘게 시간이 걸린단 얘기다.
지급 시기가 늦어지면서 국민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피해를 보전하는 효과는 반감될 전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취약 계층은 당장 쓸 돈이 없는 실정”이라며 “지급 시기를 당기기 위해서라도 기준을 단순화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美 “현금 줄테니 급한 불 꺼라” vs 韓 “지역·전통시장에서만 써”... 소비 진작 미미할 듯
미국은 지원금을 현금 또는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수표로 지급한다. 통장에 돈을 묵힐 수 있다는 부작용은 있지만, 대출 이자나 월세 등 당장 내야 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급전을 제공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다. 물론 이 지원금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한국은 지역상품권이나 전자화폐 등을 통해 돈을 풀 예정이다. 지역상품권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전자화폐 역시 소비자가 많이 찾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상품권 사용처 중 대부분이 오프라인 매장이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과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상품권을 쓰기 위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 감염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얘기다.
지역상품권이 ‘깡’과 같은 부정유통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급받은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적은 돈을 받고 판 뒤 이를 원하는 곳에 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복지행정연구회는 최근 “지역상품권은 상품권 깡 등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발행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했다. 상품권 깡으로 받은 현금 중 상당수가 유흥업 등 지하경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 지원금, 정치 논리 탓에 누더기 돼”
정부 안팎에서는 코로나지원금 제도가 이처럼 졸속으로 설계된 이유가 전적으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을 앞둔 여당의 △자산 부자에게 결코 지원금이 돌아가서는 안 되고 △지역 표를 얻기 위해 사용처를 지역에 한정하도록 △최대한 빨리 발표해야 한다는 정치 논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자신들도 기준을 잘 모르는 정책을 황급히 발표하고, 재정건전성과 신속 편리한 경기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도 모두 놓치게 됐다.
이런 정황은 지난달 29일 최종 발표를 앞두고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되, 50% 이하 구간은 100만 원, 50∼70% 구간은 50만 원으로 차등 지급하자”고 제안했지만 “지급은 같아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에 가로막혔다. 회의가 ‘소득 70% 이하가 대상’이라는 방향으로 기울자 홍 부총리는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최종 문건에는 홍 부총리의 반대 주장이 ‘부대 의견’ 형태로 담겼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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