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부터)의 사회로 2일 열린 ‘2020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토론하고 있다.  /한국경제TV  제공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부터)의 사회로 2일 열린 ‘2020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토론하고 있다. /한국경제TV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과거 겪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려면 현금 살포식 지원을 자제하고 필요한 부분에만 유동성을 지원해 재정 여력을 남겨야 합니다.”(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2일 개최한 ‘2020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의 특별토론에서는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놓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회로 진행된 특별 토론에서 이 회장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해 고용을 유지토록 해야 더 큰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위기 장기화에 대비해야”

컨퍼런스에 참석한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처럼 국민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반대하는 이유는 현금 지급 정책이 △사회적 거리두기 기조와 상충되고 △민간 소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으며 △위기 대응 여력을 줄여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오히려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성 교수는 “국민들이 원래 계획했던 소비를 지원금으로 하게 되면서 재정만 낭비되고 경기가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고 했다.

대안으로는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집중 지원하는 정책이 제시됐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갈 때까지 경제가 고장나지 않도록 하는 ‘지연 전략’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기업이 무너지면 근로자가 대량으로 해고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며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대대적인 기준금리 인하보다는 피해 업종과 소상공인에 대한 핀셋 지원이 효과적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성 교수는 “코로나19 위기가 실물부문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통화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부채비용이 높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금융 자금 등을 통해 체감 금리를 낮춰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 시대가 오면서 세계적으로 통화정책의 효과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한국 올해 성장률 운 좋으면 0%”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성 교수는 “운이 좋아야 (연간) 0%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고 마이너스 성장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분기 성장률을 2%포인트 안팎으로 낮췄는데, 그때에 비해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5~6배는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도 “코로나19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 벌어지면 한국 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블룸버그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동의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경기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성 교수는 “일각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경기가 ‘V자 반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서비스 소비 등은 하락폭을 만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동안 가지 않았던 극장을 코로나19가 종식됐다고 두 배로 가진 않을 것을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가 2000년대 초반 이후 계속 떨어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앞으로 소비가 극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경제 체질 전환 기회로 삼아야”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발 경제위기를 경제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현 정부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회장은 “분배 개선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세부 정책이 오히려 분배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으면서 경기가 되레 침체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목표는 좋았지만 정책 수단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부족했던 셈”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는 게 성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주 52시간 근로제 등 정부가 도입한 각종 규제가 생산성을 높이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결국 민간이 경제 성장의 동력인 만큼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행정처리가 간소화되는 등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며 “기존에 있던 각종 규제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제조업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국내 경기가 세계 경기변동에 따라 널뛰는 근본적인 원인은 제조업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산업 구조”라며 “경제 성장에 따라 제조업을 지식 기반의 서비스업이 자연스레 대체해야 하는데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