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규모가 9조1000억원으로 정해짐으로써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 간 밀고 당기기에서 사실상 기재부가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최대 36조원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인당 지급’을 들고 나왔지만 기재부가 이를 ‘가구당 지급’으로 틀면서 규모를 4분의 1로 줄였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지난 29일 당·정·청 회의에서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1인당 50만~100만원의 코로나지원금을 주자고 제시했다. 국내 인구 5178만 명의 70%인 3624만 명에게 지원금을 주려면 최대 36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소득 하위 80%까지 지급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중위소득 100%’에 해당하는 1000만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을 주자고 제안했다. 정부안대로라면 예산 규모는 5조~6조원으로 줄어든다. 한국의 평균 가족 구성원 수는 2.4명이다. ‘1인당’이 ‘가구당’으로 바뀌면 그 자체로 예산이 줄어들게 된다.

정부와 여당의 조율 과정에서 청와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봐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70%’라는 여당안이 지급 대상의 기준이 됐다.

기재부는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재정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인별 지급이 아니라 가구당 지급을 밀어붙였다. 여당 지도부 사이에서 “지금이 돈을 써야 할 비상시기인데 기재부가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결국 기재부 입장을 존중해주기로 결론이 났다.

재난지원금을 가구별로 지급하는 것은 흔한 사례가 아니다. 미국은 성인 한 명에게 최대 1200달러의 코로나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일본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1인당 1만2000엔을 지급했다.

기재부는 하지만 소득 기준에 자산 기준을 더한 것을 막지 못한 한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초 지급 대상 기준으론 소득만 있었지만 밤 사이 자산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30일 브리핑에서 대상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못했다. 관가 일각에선 기재부가 부자들에겐 지원금이 돌아가선 안 된다는 정권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