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는 급락했는데 국내 주유소에서 파는 기름값은 왜 찔끔 떨어질까.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줄이고 자가용 이용을 권장하지만 휘발유 값이 조금밖에 안 떨어져 소비자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국제유가 52% 떨어졌는데…국내 유가는 7.5% '찔끔 하락' 왜?
국제 유가는 이달 들어 51.9% 떨어졌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가격은 지난달 28일 배럴당 44.76달러에서 이달 27일 21.51달러로 주저앉았다. 코로나19 확산에다 세계 원유 생산 2, 3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석유전쟁이 겹친 결과다.

국내 유가도 하락세를 보이긴 하지만 국제 유가와 비교하면 하락폭이 미미하다. 지난 27일 국내 휘발유 가격은 L당 1411.92원으로 지난달 28일과 비교하면 7.5%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과 정유업계는 이를 두고 “세금이 만든 착시효과”라고 설명한다. 국내에서는 전체 기름값의 약 60%를 세금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관세(세율 3%), 석유수입 부과금(L당 16원), 교통에너지환경세(L당 529원) 등이다. 여기에 주유소 임차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도 그대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각종 세금이 정액으로 붙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내려도 국내 기름값은 그만큼 하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율 급등도 국제 유가 하락 효과를 상쇄했다. 정유사는 해외에서 석유를 수입할 때 미국 달러화로 사온다.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대체로 달러당 1100원대에 머물다가 지난달 말부터 치솟기 시작해 지난 19일 한·미 통화스와프 직전엔 달러당 1230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환율이 오르면 원유 도입 때 그만큼 원화를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

시차도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수입한 원유를 국내로 들여와 정제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기름값은 국제 유가와 실시간 연동하지 않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과 연동된다”며 “국내 주유소 기름값에 국제 유가가 반영되려면 2주일 정도 시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2~3주 후면 국내 휘발유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1년 이후 한국은 석유제품 가격을 국제 원유 가격이 아니라 국제 석유제품 가격 기준으로 책정하는데,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보다 낮아질 정도로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리상 가까운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외국 정유사들이 헐값에 석유제품을 내다팔아 국내도 2~3주 후면 휘발유 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 하락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차량 유지비 등이 줄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높여주지만 수출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주력 수출품인 석유화학·석유제품 단가 하락으로 수출액이 감소한다. 산유국의 경제 침체는 대외 수출 위축을 부른다. 정유사 실적 악화도 불가피하다. 정유사는 통상 원유를 사들인 뒤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2~3개월 후 판매한다.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하면 비싸게 산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보는 구조다. 현대오일뱅크는 24일부터 임원 급여를 20% 삭감하는 등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에쓰오일은 최근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추진 중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