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한진그룹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한진그룹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진그룹의 경영권이 걸린 한진칼(지주사)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이 완승을 거뒀다. 조 회장은 한진칼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고, 측근인 하은용 대한항공 재무 부문 부사장도 사내이사로 선임돼 경영권을 수성했다. 아울러 사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5인이 전원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반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저지에 실패한 ‘반(反) 조원태 3자 주주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은 추천한 후보의 사내·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모두 부결됐다.

1라운드 격인 주총에서 조 회장이 승리를 거뒀지만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전망인 만큼 양측은 다음 판 대비에 돌입했다.
◆ 한진칼 주총, 조원태 찬성 57%로 사내이사 연임 성공
사진=한진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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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은 27일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에서 제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지난해 재무제표 승인안과 사내이사 선임안 등을 처리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은 참석 주주 찬성 56.67%·반대 43.27%·기권 0.06%로 가결됐다.

한진칼은 이사 선임·해임 안건을 일반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어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을 얻으면 통과된다.

한진그룹에 따르면 이날 주총 주주 참석률은 위임장 제출 등을 포함해 84.93%(보유주식수 4864만5640주)로 지난해 주총 참석률(77.18%)을 크게 웃돌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3자 주주연합과 표 대결을 벌인 조 회장은 주요 안건에서 줄줄이 승리를 거뒀다.

이후 하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안도 과반(56.95%)의 찬성표를 얻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앞서 회사 측 추천 사외이사 후보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5인이 신규 사외이사로 입성했다. 주총 제 2호 안건인 사외이사 선임의 건 중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 임춘수 마이다스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최윤희 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이동명 법무법인 처음 대표변호사 등 한진칼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선임안에 대해 표결을 붙인 결과, 해당 안건들이 가결됐기 때문이다.

반면 3자 주주연합이 추천한 사외·사내이사 후보 선임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 등 4인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부결된 데 이어 사내이사 후보인 김신배 포스코 이사회 의장과 배경태 전 삼성전자 중국총괄 부사장이 각각 찬성표 47.88%, 43.26%를 얻는 데 그쳐 선임에 실패했다.
◆ 조원태, 예견된 승리…"'조현아 연합' 공세 속 자충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한진그룹 제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한진그룹 제공
조 회장의 경영권 수성은 어느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전날 주총에서 '캐스팅보트'를 진 국민연금이 조 회장 편에 서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자 주주연합 측은 이날 주총 내내 사측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주총 초반 3자 연합 측은 반도건설의 의결권 제한과 개회 지연에 따른 출석 주주수 확정, 안건 투표와 검표 절차 등을 놓고 꾸준히 사측에 이견을 제기했다. 그러나 표 대결에서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3자 주주연합이 승부수로 둔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되레 자충수가 된 여파가 컸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4일 반도건설이 고의로 허위공시를 했다고 판결, 3자 주주연합이 주총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이에 반도건설이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8.2%에서 5%로 줄어든 점이 조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앞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과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찬성한 점 등도 긍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한진그룹이 사외이사 독립성을 높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 유휴 부지를 매각하는 재무구조 개선안을 선제적으로 내놨다는 점도 도움이 됐다고 재계에서는 평가한다.

지난해 대한항공 주총에서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된 전례가 있는 만큼 한진그룹은 노조까지 나서 조 회장의 재선임에 총력을 기울였다. 반면 3자 주주연합은 주총장에서도 조 회장을 비롯한 현재 경영진의 경영능력을 비판하며 막판까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 3시간 지연 시작된 주총…경영권 분쟁도 장기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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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주총은 세간의 이목을 끈 만큼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다. 강당의 정규 좌석에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접이식 간의 의자를 더 들여야 했다. 앞서 열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정기 주주총회가 코로나19 사태로 한산했던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주총은 출석 주주에게 수차례 양해를 구한 끝에 당초 개최 예정 시간인 오전 9시를 세 시간 가량 넘긴 낮 12시 5분에야 시작됐다. 이는 주요주주 간 사전 합의가 지연됐고, 중복 위임장이 많아 검사인 주관 하에 실제 위임 의사 확인 등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한진칼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이날 마스크 미착용 주주의 주총장 출입을 제한했다. 주총이 예정된 한진빌딩 앞에서는 채이배 민생당 의원과 '땅콩회항' 피해자인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이 기업지배구조 개선 안건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날 주총 이후에도 향후 임시주총 소집 등을 통해 양 진영 간 경영권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조 회장측과 3자 주주연합은 올 들어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며 '장기전' 태세에 나선 상태다.

3자 주주연합은 KCGI와 반도건설을 주축으로 지분을 추가로 늘려 총 42.13%(지난 24일 기준)를 확보했다. 조 회장 측의 백기사인 델타항공은 기업결합신고 기준(15%) 직전인 14.9%까지 지분을 늘렸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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