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주일 새 달러당 30원을 오르내리며 요동치고 있다. 기업들의 안전자산 확보 움직임으로 달러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26일 서울 명동의 사설환전소에서 한 시민이 외화를 구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코로나19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주일 새 달러당 30원을 오르내리며 요동치고 있다. 기업들의 안전자산 확보 움직임으로 달러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26일 서울 명동의 사설환전소에서 한 시민이 외화를 구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5대 은행의 달러화예금 잔액이 이달 들어서만 4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기업들의 ‘달러 사재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감소 추세를 보이던 엔화 유로화 등 다른 외화예금 규모도 이번주 급증하는 등 국내 외환시장이 불안감에 요동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의 달러화예금은 지난 25일 기준 432억2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396억9200만달러) 대비 35억3000만달러(약 4조3000억원) 늘었다. 이번주 들어 급증세가 두드러졌다. 20일(409억9800만달러) 이후 5일 새 22억2765만달러 증가했다. 외화예금의 대부분은 기업 예치금이다. 수출입 기업의 달러 사재기가 반영된 수치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주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됐음에도 달러를 확보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은행 자금 관련 부서 업무는 거의 마비됐다”며 “달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로화와 엔화 위안화 등 다른 외화예금도 크게 출렁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분간은 환율 등락보다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움직임이 국내 외환시장의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계도 기업도 "달러 사자"…'환율 오르면 판다'는 공식도 깨져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수요가 밀려들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는 ‘공식’도 무너졌다. 5대 예금의 달러화 규모는 지난달부터 쉬지 않고 급증세다. 미국 경제마저 불안해지자 기업들이 만약을 대비해 ‘사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달러를 제외한 다른 외화 예금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당분간 환율보다는 시장 불안감이 외환시장을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달러가 최고"…환율 올라도 사재기
○환율 공식 깨뜨린 불안감

통상 외화 예금 추이는 환율의 흐름을 따랐다. 환율이 오르면 시세 차익을 보려는 움직임이 이어져 외화 예금 규모도 줄었다. 반면 환율이 내리면 싼값에 통화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이어져 규모가 커졌다.

올 들어 이런 ‘공식’이 깨졌다.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달러화 예금은 지난 20일 409억9862만달러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한 해 가장 낮았던 지난해 6월(405억238만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다. 환율이 이달 들어 급등했는데도 불어난 것이다. 이번주 들어 환율이 진정세를 보였지만 매수세는 이어져 외화 예금 규모는 더 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에서 달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평상시에는 국내 지점을 둔 외국계은행 등을 통해 조달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막힌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극도로 예민해진 기업들의 불안감이 반영됐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화를 미리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달러화 부채가 있거나 만기 불일치 위험이 있는 회사들이 ‘생존’ 차원에서 달러를 모으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높은 환율에 달러를 사서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미리 달러를 확보해 놔야 한다는 심리가 팽배하다”며 “그만큼 시장과 기업의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화 예금 추이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5대 은행의 유로, 엔, 위안화 예금은 한 달 새 규모가 줄어들다가 이번주 다시 급증세다. 특히 유로화 예금은 5일 새 1조원 넘게 불어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마이너스 금리인 유럽 시장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불안해지자 보유 중이던 유로화를 국내에 들여와 예치하는 기업도 많다”며 “다만 기업들의 관심이 달러로 쏠려 있기 때문에 당분간 외환시장은 달러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개인 고객 달러 추매는 위험”

달러 품귀 현상은 개인 고객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엇갈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몇 주 사이 급등과 급락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전일 대비 40원 오른 1285원70전에 마감해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6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며 다음날 환율은 다시 39원 급락했다. 한 외환 전문가는 “환율이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연말에는 1150원 선으로 안정될 것이란 증권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선택과 집중을 한다”며 “안전자산은 달러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속되면 다시 환율이 크게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차익을 노린 달러 매수는 위험하다는 게 주요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의 지적이다. 최홍석 신한은행 잠실PWM센터 팀장은 “미국 중앙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와 한·미 통화스와프 등으로 달러 환율이 일단은 안정세를 찾았다”며 “달러 가치가 안정된다고 해도 원화 가치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아직 많다는 점에서 환율을 예측해 달러를 매수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장은 “현재 일부 보이는 달러 매수 움직임은 수익률보다는 위기 상황에서의 통화 분산 차원”이라며 “환율이 올랐는데도 달러를 파는 경향이 아직 안 나타나는 이유는 위기가 진행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소람/송영찬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