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경제 비관론과 낙관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전례없는 위기, 급기야 ‘대공황’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경제 비관론과 낙관론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경제학자들은 한편으로는 참 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골치 아픈 일이 터지면 일단 ‘외생변수’로 돌리고 본다. 코로나19 사태도 전례없는 ‘경제 외적(外的) 충격’으로 규정해버린다.

과연 그런가? 감염병은 지금의 경제 시스템과 완전히 무관한 변수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제는 거의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경제에 충격을 주는 리스크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데는 발생 후 초기 대응 실패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온전한 외생적 충격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 많다.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경제모델이 감염병까지 고려해 예측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올 수 있겠다. 하기야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과잉 기대’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이 정도는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반적인 ‘기대’는 충족시키고 있느냐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우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예측하지 못했다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린다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가 “올해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봐도 그는 미·중 무역전쟁, 지정학적 갈등, 브렉시트 등 누구나 알고 있는 몇가지 위험요인만 거론했을 뿐,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무역전쟁, 지정학적 갈등, 브렉시트로 2008년보다 더 큰 위기가 올해 도래할 것이라는 설득력있는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 기업부채는 많아지고, 마이너스 금리 등으로 정부 총알은 없다고 했지만, 그런 주장은 그 전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것도 솔직히 믿기 어렵다. 경제학자들은 틀릴 경우를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 놓고 예측을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루비니는 이번에도 비관적 전망, 그것도 더 센 쪽으로 베팅을 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나쁜,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보다 큰 공황(Greater Depression)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이쯤되면 그의 비관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극단적인 예측만 하다가 한번 딱 맞히면 바로 유명해지는 게 경제예측 시장이다. 그 사람이 그 전에 얼마나 틀렸는지 따지지도 않는다. 경제예측이 누리는 이런 특권은 어떻게든 앞날을 미리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경제예측이 갖는 순기능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경제예측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면 예측 경쟁이 일어나고 예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또 다양한 예측이 나오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경제주체들에 놀라지 말고 대비하라고 알려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경제예측을 통제하는, ‘계획’이 곧 ‘예측’인 중국이나 예측을 할 때 정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이나 공포 심리에 편승한 극단적인 경제예측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경제의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기대’에 의존한다는 점을 노려 현재의 분위기를 타는 속성이 있다. 여기서 경제주체들이 어떤 예측을 선택할지가 또 하나의 이슈로 등장한다.

사실 경제예측이 맞고 안맞고의 책임을, 경제학자들에만 돌릴 수는 없다. 경제예측이 하나의 시장이라는 얘기는 예측 공급자 뿐 아니라 예측 수요자도 있다는 의미다. 예측 수요자가 유명한 경제학자가 예측했다는 이유로, 과거에 맞힌 적이 있다는 이유로 예측을 산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수요자의 잘못된 선택이 예측 공급자에 ‘시그널’로 피드백되기 시작되면 악순환은 쉽게 형성된다.

이 대목에 이르러 예측 수요자를 향해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At Your Own Risk’(스스로 위험을 각오하고)라는 주제의 사설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경제학 자체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 만큼 예측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경제가 복잡해질수록 투자자들은 물리학 같은 정교한 예측을 요구하지만, 투자자의 기대와 달리 경제예측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는 ‘역설’이 일어난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예측 실패는 경제학에 이론적 도그마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숙제를 던져줬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경제학에 ‘거만한 우월감’을 버리고 보건의료, 과학 등 다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미 벌어진 일을 설명하거나, 선의의 정책이라고 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추론해 내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극단적인 예측이 난무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경제예측이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갖고 있는지, 예측 공급자(또는 예측기관)와 예측 간에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예측 수요자가 판단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위험을 각오하는 ‘자기 책임의 원칙’하에서 말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